소풍나무
소풍나무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3.04.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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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특별한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꽃이 청초하고 아름다운 수사해당화다. 지금까지 쉬어家주변에 이런 저런 종류의 나무들을 심었지만 그 나무들은 꽃이 마음에 들거나 평소 내가 많이 좋아했던 나무들이고 혹은 남편이 원해서 심은 것들이다. 심을 때는 줄기가 손가락처럼 가늘었던 나무들이 어느 사이 자라나 여린 묘목에서 제법 굵어져 나무티를 내고 있다. 해가 갈수록 푸르게 쑥쑥 자라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푸르던 날도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어느새 푸르던 시절을 보내고 환갑을 맞이하는 남편의 나이와 예순의 문턱을 넘어선 나를 마주한다.

문명과 의학의 발달로 모두들 백세시대를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한들 나이 예순이면 인생시계 내리막길에 들어섰고 노을이 설핏 비치는 나이임이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부부도 천상병님 시에서처럼 이 세상 소풍을 마치는 날을 맞이하게 되리라. 얼마 전부터 남편은 우리도 언제 어떻게 이 세상살이를 끝내고 저세상으로 가는 날이 온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했다. 요즘 들어 주변 친구들이 암 투병한다는 소식도 종종 듣게 되고 생사를 오가는 형님도 계셔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듯 했다. 나 역시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마음을 추스릴 겨를 없이 힘들게 보낸 시간이 있어 남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남편말대로 지금 우리부부에게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다 무거운 주제지만 장례문화와 훗날 우리부부가 묻히게 될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는데 남편과 나의 선택은 수목장이었다.

나무를 미리 심었노라고 두 딸과 지인들에게 수목장나무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은 제각각 달랐다. 수목장이란 단어가 내포한 죽음에 대한 무거움이 그들이 생각할 시간을 방해했을까. 어이없어 하기도 하고 너무 이른 것 아니냐며 별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그걸 왜 본인들이 준비 하냐며 너무 슬프지 않냐 며 되묻는 지인도 여럿 있었다. 다행인건 두 딸이 보인 반응이 긍정적이고 작은아이는 좋은 생각이라며 아빠 엄마를 존중해주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뭔가 두려움이 있는 듯 여운을 남기는데 한창 청춘인 아이가 왜 아니 그럴까 싶다.

오래전에 유언장 미리 써보기를 체험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한 줄 한줄 써 내려 갔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때 그 눈물의 의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후회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유언장을 다 쓰고 난후 앞으로 남은 생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후회남지 않을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건 아마도 수목장을 생각하며 나무를 심어서 일터였다. 모두에게 죽음과 수목장이란 말이 무겁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당연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비켜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리 많이 생각하고 준비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게 남편과 나의 마음이었다. 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는데 손끝이 떨렸다. 나라고 마냥 마음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나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앞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잘 살아 볼 테니 너도 잘 자라 주면 고맙겠다고 흙을 토닥거리며 속삭였다.

“나무야,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우리부부의 소풍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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