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의 당찬 소녀 `매티'의 아버지 복수기를 그린 2011년 개봉 영화 `더 브레이브'. 매티의 아버지는 악당 `채니'와 그 일당에게 살해당했다. 매티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보안관 `카그번'을 고용해 그의 뒤를 쫓기로 한다. 그러나 술주정뱅이 카그번은 그녀를 계속 실망시키고 현상금을 노린 텍사스 레인저스의 `라 뷔프'까지 가세해 채니를 잡기 위한 위험한 동행이 시작된다. 어린 소녀, 늙은 술주정뱅이 연방보안관, 명예와 자부심으로 꽉 찬 텍사스 레인저스까지 그 셋은 이 추격 과정에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서로를 통해 확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영화를 `더 브레이브',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이 영화의 원 제목은 `True Grit', 진정한 투지다.
그릿은 투지, 기개를 일컫는 말이지만 심리학에서 그릿은 긍정적, 비인지적인 기질로, 특정 장기 목표를 이루거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동기인 최종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열정과 함께 노력의 꾸준함을 지닌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 등은 그릿을 `장기 목표에 대한 인내와 열정'이라고 정의했다. 더크워스 연구팀에 의하면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실패와 역경을 겪어도 오랜 시간동안 결심과 동기를 유지할 수 있으며 아이비리 학부생들의 GPA 점수, 미국 육군사관학교 사관 후보생 자퇴율, 내셔널 스펠링 비 순위 등을 분석해 그릿이 지능지수와 같은 지적 재능보다 더 좋은 성공의 지표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 3월 일본 문부과학성(文科省)은 `21세기 출생아 추적조사'특별 보고를 발표했다. 조사는 21세기 출생한 어린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시작한 것으로 2001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을 표집해 매년 1월과 7월 두 번 조사연구를 진행하는 정부주도의 종단연구이다. 이번 특별 보고에서는 4가지 사항이 중점이었는데 학교생활 적응,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의 체험활동 경험, 수리계열 진학 촉진 요인, 수업료 감면 등의 장학금의 영향이 그 구체적 내용이었다.
이중 체험활동 경험을 자세히 살펴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의 체험활동 경험은 그 이후 학생의 삶에서 비인지 능력에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번 보고에서는 조사대상인 2001년생들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경험한`자연체험', `사회체험', `문화체험'이 만 20세가 될 때까지`자존감',`정신적 회복능력', `끈기', `정신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했는데 분석 결과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자연체험이나 문화체험을 하면 만 20세가 될 때 자존감, 정신적 회복능력, 끈기, 정신건강의 모든 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부과학성은 대부분의 정서적인 영역의 발달은 유아기에 집중되고 또 각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논의로 흘러가기 쉬운데 이번 연구를 통해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 계획적인 체험활동 기회를 충실히 하여 가정에서 체험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어린이의 비인지 능력도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릿이라 불리는 비인지적 기질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어떻게 그 능력과 기질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나 근거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20년 연구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의 체험활동이 비인지적 성향인 자존감을 비롯한 끈기와 회복능력에 도움을 주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철학자 함린은 경험만으로는 지식을 생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식이 경험에 시간 상 선행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경험의 논리적 필요조건임에 분명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어쩌면 초등학교 고학년의 체험이 의미 있는 것은 경험의 논리적 필요조건으로 지식을, 교과를 학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계절은 봄의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2023년의 봄을 체험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교실에서든 운동장에서든 봄을 만끽하자. 그릿을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