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
  • 정창수 시인
  • 승인 2023.04.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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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창수 시인
정창수 시인

 

서북부 충청권은 지금 개발과 발전의 현주소다.

계획되지 않은 무분별한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생산시설로 난무했었다. 우선은 수도권과 수출할 장소와 최적의 접근성이 보장된다는 생각이다.

과거 60~70년대가 연상될 정도다.

그러니 인력 부족으로 인접 지역에서 충원되든지 그도 한정된 인구라 수없이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아침에는 도로변 여기저기 우리나라 맞는지가 착각될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 숨 가쁘게 살다 보니 20년이란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뒤돌아보니 허무하고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었는가? 하늘을 보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오랜 습성으로 메모해 둔 글을 해마다 버리지 않고 묶어 둔 것이 아주 다행스럽게 남았다. 이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 글을 쓸 수 있는 얼마의 시간을 주실지 그건 신만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첩첩 골짜기 농막을 구매한 것도 이십여 년 되었다.

당시 마을 연로하신 분에게 혹여 저의 자리 주변 내력을 알고 싶다 했더니 바로 뒤편에 상징적 옻 샘과 삿갓 바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 주셨다. 삿갓 바위에 발목이 묶였는지 알 수 없다.

농사일은 문외한이라 주로 약재 나무를 골고루 심었는데 양이 많아 고심 중 농협 조합원으로 가입해 두었던 것이 다행스럽게 한 날 로컬프드에 관한 교육을 받아 보라 하여 참여해 수료했다.

가족을 위해 가꾼 것이 상품화될 수 있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인접 세 개 행정구역 로컬프드에 진열하여 나눔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옆구리가 시렸다. 꼭 해야 할 것이 뒷전이니 그랬다.

문제는 필요한 정보를 얻을 루트가 침식돼 버린 것이었다. 이제 만사를 제겨두고 다시 길을 찾아야 했다.

읍내 몇 해 전 구면이 있는 출판사를 찾았다. 쾌히 출판을 승낙해주었다. 장날 장터국밥에 막걸리를 나눈 적이 있는 동갑내기 옛 친구의 친구였다.

호와 갑 두 사람은 가슴으로 살고 있었다.

부럽기도 했으나 가감 없이 친구로 받아들여 줬다. 그들로부터 팬데믹 상황에 지원금을 받았다는 것도 이것저것 알고 나니 너무 동떨어지게 산 것이다.

흘러가는 물 붙잡을 수 없듯 삼십 년 지기 퇴직 후 새 직장근무를 위해 떨어졌어도 시간이 맞으면 한 달 두어 번은 장날 만났는데 갑자기 가버린 친구의 빈자리에 그 친구의 친구들이 다시 채워 준 것이다.

`음성 장은 읍내 중심도로에 /난전으로 선다. /언제부터인지 여기/이 일 칠 일 열리는 파시 /장돌뱅이들은 알고 있을게다. //불정이 좋아했던 고향 막걸리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선지와 우거지로 /안주 삼아 서너 잔 부대면 /굿거리장단에 콧노래 절로 난다. //사계절 내내 변하지 않은 /오 일마다 펼쳐지는 국밥집 /뇌에 각인된 미각으로 가슴에 남은 /우정 //세월이 가고 사람이 가도/변하지 않은 장날 /그도 그림자만 덩그러니 술잔에/남기고 갔다. //이렇게 무정한 일이 우리네 일상인 걸 /오늘도 하당고개 넘어 백마산 바라보며 /호, 갑과 엷은 기억 담은 잔을 /기울인다. -장터국밥.'

새로운 친구들이 길라잡이 도움을 준다.

여기저기 활동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었다.

그렇다 혼자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좋은 벗과 서로 의지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함도 배웠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도 찾아오지 못하는 오지. 그러니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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