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무공실' 수업
첫 `무공실' 수업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3.04.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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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무공실'이라 해서 실용음악과에서도 무공을 연마하나 했더니 `무대공연실습'을 줄여서 그렇게 부른단다.

생소하기만 한 용어들 속에서 새내기 음대생으로서 OT시간부터 어리버리하기만 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놀랍게도 성인학습자라 불리는 일반적 학령기를 벗어난 학습자들이 우리 과 전체 입학생 중 절반이 넘는다. 빛바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뒤늦게 다시 시작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도 청춘이고 나도 청춘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스무살의 청춘을 다시 배움의 길 위에서 기꺼이 보내고자 들어선 가슴 뜨거운 청춘들!

드디어 첫 번째 무공실시간.

순번에 따라 무대로 나와서 각자 자신이 선정한 곡을 간단히 소개하고 연주하면 된다.

작곡이 전공인 나로서는 내가 지은 곡을 아직 누구에게 부르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기타를 치면서 내가 직접 부르기로 했다.

순번에 따라 무대로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도, 발표하는 모양새도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표정 또한 다양하기만 하다.

자신이 아는 것은 그저 제조업뿐이었단다. 그렇게 숙명처럼 30년을 제조업을 운영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60을 그렇게 맞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곧 닥쳐올 60을 대비해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초등학교 때 멈췄던 피아노를 떠올렸단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피아노 앞에 앉더니 악보와 건반을 번갈아 보면서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연주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연주는 끊어질 듯 이어졌지만 나도 모르게 그의 연주에 맞춰 나지막이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숨어서 울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 했다. 감동은 역시 명연주에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연주를 마치고 웃으면서 무대에서 내려오는 그의 모습이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한결 여유롭다.

쓸쓸할 때 어린 왕자는 노을을 본다고 했다. 어느 날은 마흔네번의 노을을 보았다고 했다.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으면 마흔네번이나 노을을 보았을까?

어린 왕자처럼 나도 노을이 좋다. 아마 그래서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에 곡을 붙여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그네'에 곡을 붙이면서 노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노을은 쓸쓸함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아련함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러다 지난 가을 `노을을 보면'이란 제목으로 곡을 썼다. 음악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첫걸음에서 만난 첫 번째 무대공연실습 시간 나는 그 곡을 발표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을까? 두 번째 스무살, 세 번째 스무살 청춘들이 서툰 내 노래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쳐 준다.

그렇게 내 생애 첫 발표무대가 마무리되었다.

어떤 학우는 고맙게도 내 발표장면을 녹화하여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영상으로 나를 다시 보면서 가슴이 떨렸다.

4월에는 오창 호수공원에서 버스킹도 계획되어 있단다. 그러니 나도 내 노래를 오창 호수공원에서 부를 것이고 그렇게 또 나는 삶의 첫 버스킹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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