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의 정치사적 고찰
4·19의 정치사적 고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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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그때 거기'서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은 `말'이 없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지금 여기' 사람들의 몫이다.

`4·19의 정치사적 고찰'은 <수요단상>의 제목이지만, <수요단상>의 제목 또한 아니다. 1980년 때 일이니까 벌써 4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찌라시'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시장 한 가운데 위치하던 교회에서 강연과 토론을 겸하는 행사의 홍보물을 나는 잔뜩 가지고 있었다. 연사가 누구인지, 참석대상은 누구였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희망하던 `서울의 봄'은 혼란스러웠고, 아직 계엄은 선포되지 않았으나 `4·19의 정치사적 고찰'은 감시와 사찰의 대상이었다. 그때 나는 스물을 갓 넘긴 피 끓는 청춘이었고, 두렵고 떨리기는 했으나 차마 주저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4월19일. `그때 거기'에서 독재의 총칼에 분연히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들은 없다. 수유리에, 혹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묘역에 잠든 이들은 대체로 `불의'를 온몸으로 거부하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벌써 63년이 지난 4월 19일의 혁명. `그때' 나는 세상에 있었으나 비극을 알지 못하고, 지금 `그때'의 세대에 속하고 있으나 죽은 이들 만큼 투철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20년이 흘러 겨우 스물을 넘긴 청년이 되어서야 `4·19의 정치사적 고찰'이 궁금했던 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때'의 `기억'이 내게 흐른 덕분이다.

불의에 격분했으며, 독재의 만행에 분연히 항거하면서 맨 앞줄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러므로 가장 먼저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희생으로 이승만 독재는 막을 내렸으나, 소위 비범한 지도층은 결연(決然)하지 못했다. 군대가 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반민족적 행위와 단절하지 못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의 뜻일 수 없다.

4·19는 오랫동안 `불온'이었다. 쿠데타가 혁명으로 둔갑하고, 독재와 불의에 항거했던 희생을 쉬쉬하며 감춰야 했던 시절, 4·19는 감시와 사찰과 처벌의 표적이었다. 그러므로 암울했던 군사독재의 시절 동안 4·19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 `기억'이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아픈 상처를 겪지 못한 다른 사람에게 역사적 기억이 전이되어 흐르게 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헌법 전문에 뚜렷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은 헌법의 요구대로 뚜렷하게 `계승'되고 있는가. 63년 전의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이어지게 하는 것은 명제는 뚜렷하나, 실체는 희미한 내 청년시절의 `4·19의 정치사적 고찰'과 다르지 않다.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을 단순히 전승하여 기념하는 일은 형식이다. 다만 평범했으므로 더욱 서러운 그날의 죽음이 비극의 기억으로 되새겨지는 일과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의 의미를 `4·19정신'으로 계승하는 일은 다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열망은 `4·19'로 인해 비로소 비롯된 것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짓눌렀던 군사독재의 사슬을 마침내 끊은 것은 `시민'의 이름으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온전하게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다.

그리고 사사로운 `국정농단'의 위기를 방관하지 않고 떨쳐 일어나 나라를 구한 평범한 시민의 위대한 힘을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자랑한다. 한겨울 삭풍에도 굴하지 않고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제대로 된 나라'를 외쳤던 `그때 거기'의 열정은 이제 겨우 7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 `기억'은 여전히 생생한데,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굴종과 위태로움, 그리고 `독재'의 우려를 숨기지 못하는 나라의 처지를 탄식하고 있다.

거리를, 광장을 가득 채우며 나라의 위기를 걱정했던 촛불의 혁명적 역동은 계승되지 못하고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회한은 평범한 사람들의 탓이 아니다. 정치는 실종되었고 사람들은 일찍 꽃잎 떨어진 봄날을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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