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쯤
저녁 6시쯤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3.04.11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환함의 순간적 머무름이다. 대기를 어루만지는 빛의 미묘함이다. 해지기 직전 잠시 머무는 잔광은 번쩍이지 않고 그냥 환하다. 강하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은 저녁 빛은 욕심을 버린 편안함이다.

시간을 쪼개 써도 모자랄 시기에 아프다는 핑계가 길었다. 무기력증에 빠져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지못해 움직이고, 생각 없이 허비한 날이 보름을 훌쩍 넘겼다. 돌려받을 수 없는 아까운 시간을 아까운 줄 모르고 흘려보냈다. 할 일 많은 젊은이가 아니어서 더 게으름을 피웠다. 그러다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던 저녁 풍경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어둠이 배웅나오기 전, 순간의 밝음에 모든 사물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지마다 활짝 피었던 매화가 지고 어느새 초록 잎이 뾰족하게 세상 구경을 나왔다. 얼마 전 다른 곳에서 우리 집 마당으로 옮겨 온 고목이 신통하게 가지 끝까지 꽃을 피우더니 꽃잎 진 자리에 작은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있다. 돌 틈 사이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꽃도 금방 세수한 아이처럼 맑고 화사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한낮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시간, 서쪽 끝으로 방향을 바꾼 해가 순한 빛으로 환하게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경이다.

저녁엔 무모함이 지나고 명상이 오는 때다. 하루의 그림자가 가장 길어서 나 자신을 나보다 더 멀리 나아간 그림자에 포개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살이에 지쳐 모든 게 너 때문이라는 원망도 억울함도 사그라지는, 그래서 시간이 약임을 확신하게 되는 저녁, 가끔은 유한한 시간에 몸이 달기도 하는 내 삶도 저녁 6시와 7시 사이에 있다는 걸 가끔은 외면한다.

어느 때부터였을까, 친구들을 만나면 은근슬쩍 꺼내던 남편이나 자식 자랑도 사라졌다. 명예나 재물에 대한 욕심도 시들하다.

건강한지 살피고 별것 아닌 일로 호들갑스럽게 웃고 수다 떠는 가벼운 것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늙은이와 젊은이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이러한 편견을 떨쳐버리려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암묵적 편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소심해진다. 고단한 시간이 지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저녁의 삶이 좋다는 친구가 대부분인데 무언가 도전해 보겠다고 나서는 게 무모한 것은 아닌지 망설인다.

노인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나이 제한으로 취업할 수 없음에도 직접 찾아가 궂은일도 좋으니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단다.

아들이 의사고 며느리는 교수다. 딸 가족은 외국에서 사는 가화만사성의 대표적인 가정이다. 요즘에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나면 남는 시간이 아깝다고 영어 회화를 다시 배워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저물기 시작하는 삶이지만 순간적 빛의 머무름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사는 친구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이 들어 살아가는 방식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소소한 취미활동으로 만족하고 남은 시간은 흘러가게 두는 사람과, 잠시 빛나는 저녁 빛의 중심에 서서 자신을 밝고 선명한 존재로 만드는 사람이다.

해 질 녘의 밝음은 잠깐이다. 길가의 가로등이 켜지면서 황혼은 어스름하게 어둠으로 깔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