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
봄 날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4.1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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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봄 하면 꽃이고, 꽃 하면 봄이다.

다른 계절에도 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봄의 꽃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계절을 압도한다는 데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봄이면 땅 바닥부터 나뭇가지 끝까지 꽃은 피고 또 피어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의 기운이 꽃 피움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송(宋)의 시인 주희(朱熹)도 꽃으로 가득 찬 봄날을 즐기기는 다른 사람과 매한 가지였다.


봄날(春日)

勝日尋芳泗水濱(승일심방사수빈) 화창한 날에 꽃 찾아 강가에 왔더니
無邊光景一時新(무변광경일시신) 아득히 먼데까지 빛들이 동시에 새로워졌네
等閑識得東風面(등한식득동풍면) 무관심하다가 봄바람이 얼굴에 닿자 알았네
萬紫千紅總是春(만자천홍총시춘) 온갖 보랏빛 붉은빛이 모두 봄이라는 걸

계절상으로는 봄이 왔지만 시인은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내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날, 꽃이 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근처 사수(泗水)라 불리는 강가로 꽃을 찾아 나섰다.

집 안에만 처박혀 지내다가 오랜만에 바깥출입을 한 것이다.

강가에 도착해 보니 전에 보았던 빛들은 오간 데 없고 완전히 새로운 빛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눈길이 미치는 곳까지 끝도 없이 한날한시에 뒤바뀌어 있었다.

시인은 겨울 색이 봄 색으로 바뀌었음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닿는 바람도 달라져 있었다.

무관심해서 그 바람이 그 바람이지 했는데 어느새 바람 방향이 동쪽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강가에 와서 만난 새로운 광경이 알고 보니 자줏빛 붉은빛의 온갖 봄꽃들로 인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봄 때문에 세상 빛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에 얽매어 있거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문득 세상사의 덧없음을 느낄 때 찾는 것이 바로 자연이고,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계절이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넘어온 것을 모르고 지냈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스스로 내팽개치고 사는 것이리라.

아무리 속된 일에 붙잡혀 살더라도 봄날 하루쯤은 스스로를 해방시켜 봄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즐기며 사는 삶의 최소한의 척도가 아니겠는가?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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