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의 그림
외손자의 그림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4.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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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겨울을 이겨낸 무심천의 꽃들이 환하게 웃는다. 개나리, 목련, 벚나무가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향기를 뿜고 있다.

무심천롤러스케이트장 일원에서 청주예술제가 열렸다. 특별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체험 부스마다 학생과 시민들로 북적였다.

코로나로 중단했던 야외 행사가 4년 만에 열렸다. 때맞춰 벚꽃이 만개되어 상춘객과 행사 참여 인원이 어우러져 무심천이 모처럼 생동감 넘쳤다.

청주예술제 일환으로 청주미술협회에서 실시한 충북도내 유·초·중·고생 미술 사생대회에 외손자와 참여해 감회가 남달랐다.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손자는 청주미술협회 접수처에서 나누어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주제는 자유로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오후 1시까지 실시되었다.

외손자는 분홍색 크레파스로 커다란 꽃 세 송이를 그린다. 밑그림 없는 도화지에 손자의 거침없는 손놀림에 피어난 꽃송이가 특이하다. 세 송이 꽃의 꽃수술 부분에 동물을 그린다. 왜 꽃잎 중앙에 꽃술을 그리지 않고 동물을 그리냐고 묻자 손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고 싶어 그렸단다.

나는 어릴적 풍경화를 그릴 때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렸었다.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손자의 상상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도화지 왼쪽 위의 꽃 중심부에 사자가 중앙 아래의 꽃 중심부에는 반딧불이를 오른쪽 위의 꽃 중심부에는 병아리를 그렸다. 왼쪽 아래 여백에는 거북이가 걸어간다. 중앙 위쪽 여백에 호랑이가, 오른쪽 여백에는 기린이 서있다. 외손자의 손놀림에 따라 그려지는 동물은 상상 외로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외손자의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2시간 넘도록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외손자가 대견하다. 때로는 양팔을 들어 기지개 켜고 잠시 쉬기도 하며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제 바탕을 칠하면 된다. 외손자는 도화지의 여백에 연두색 물감을 칠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붓을 터치하며 바탕을 덧칠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봄은 꽃이 주인공이다. 조연은 잎이다. 외손자는 봄의 주인공을 아는지 분홍꽃을 커다랗게 그렸다. 그리고 조연인 잎의 연두색을 바탕색으로 칠하였다.

엑스트라로 용맹의 상징 사자와 호랑이를 그렸다. 장수의 상징 거북이와 희망을 상징하는 병아리를 그렸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반딧불이와 기린을 그렸다.

외손자가 2시간 여 그림을 그리는 동안 누구도 관섭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부모가 알려주지 않은 외손자의 순수한 동심을 보고 있었다.

일곱 살 외손자는 2시간 여 동안 자신의 꿈을 도화지에 그려놓았다. 자신이 지금 병아리처럼 작고 어리지만 사자와 호랑이같이 용맹해지고 싶은 마음과 거북이처럼 오래 살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다.

반딧불이는 고사성어 형설지공의 유래를 갖고 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세상을 살고 싶은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기린은 성인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자신이 성인이 되겠다는 호연지기에 나는 외손자가 달리 보였다.

코 흘리게 철딱서니 없는 개구쟁이로만 알고 있었다. 오늘은 외손자가 피카소보다 더 천재적으로 보였다. 외손자 곽채민이 품고 있는 건강한 꿈과 포부를 엿본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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