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차
쑥차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4.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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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막 고개를 드는 쑥을 채취하러 가잔다. 쑥? 작년에 쑥 차를 만들겠다고 세 번의 호들갑 떨던 과정이 생각난다.

밖에서 언 몸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니 따끈한 차 한 잔을 준다. 받아 들고 찻잔을 들여다보니 볼품없는 풀줄기 두어 개가 가로누웠다.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찻잔을 입가에 대고 향을 음미하니 어려서 떡으로 먹던 쑥 향기다. 자세히 보니 쑥꽃이다. 줄기에 맺혀 있는 작은 꽃이 부풀었고 물은 연한 미색이다. 쑥 향기를 차로 맛볼 수 있다니 놀람과 동시에 어머니를 상기시킨다.

어머니는 봄이 오면 쑥을 뜯어와 쌀가루 묻혀 절구에 쪄 절편을 만들기도 하고 밀가루를 묻혀 익혀 주었다. 어머니의 정이 깃든 향기를 한겨울에 맛보다니 행복하다. 쑥은 봄 채소라 불릴 정도로 서민의 입맛에 배어 있다. 예로부터 다양한 질병을 치료해 온 약재이기도 하다.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가 쑥이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우리 몸에 좋은 것이다. 별로 먹은 적도 없는 아들이 나보다 더 쑥 향에 푹 빠져 있다. 쑥 잎으로 차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봄이 오면 쑥을 채취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 기다림인가.

봄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윽한 쑥 향기를 그리며 들판으로 나왔다. 긴 한파를 이겨낸 쑥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양탄자에 앉아 칼끝을 밑동에 대니 저항 없이 고분고분 자기 몸을 맡기는 저들을 도려와 정갈하게 씻어 놓고 아들을 불렀다.

커다란 솥에 덖다가 꺼내 파란 즙이 나올 때까지 비비다 한 짐 나간 후 다시 덖었다. 비비는 동안 면장갑이 젖어 손이 델 정도로 뜨겁다. 우리는 손이 뜨거워 호들갑을 떨지만, 쑥 잎은 자신의 진액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다 끌어안아야 한다는 걸 아는지 그 뜨거운 열에 모양을 잡아간다. 말렸다 덖기를 대여섯 차례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그럴싸한 찻잎의 모양이 되었다.

시식하려고 쑥 잎을 컵에 넣고 따끈한 물을 붓고 기다렸다가 마시니 쑥 향이 너무 미세하다. 그리고 야릇한 냄새도 난다. 냄새의 원인은 솥에 배어 있던 양념 냄새가 쑥으로 전이되었다. 손이 뜨거워 오도방정을 떨면서도 참았는데, 작품을 버리다니 너무나 허탈하다.

다시 쑥이 영글기를 기다렸다. 쏟아지는 따가운 초여름 햇볕과 마주 앉아 물을 많이 저장한 실팍한 쑥대만 골라 왼손은 쑥대를 붙잡고 오른손은 밑동에 있는 커다란 억센 잎만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에는 양은 쟁반을 택해 놓고 또 아들을 불렀다.

앞서 하던 대로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말렸다. 시음하는 아들의 표정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긴장과 초조함이 오간다. 물어보고 싶지만, 또 실패작이라 할까 봐 물을 수가 없었다. “된 것 같기는 한데 이번에는 좀.”이란다. 잽싸게 한 모금 물었다. 내 입맛도 지난겨울 처음 맛본 향을 따라잡지 못한다. 풋내랄까 쓴맛이랄까 차의 빛깔부터가 따라잡지 못한다. 덖고 비비는 과정이 약했나. 약한 불에 고루 잘 익혀 비비고 주무르는 손길이 덜 섬세했었나. 또 실패작이라 할 수밖에 없다. 실패작을 앞에 놓고 곱씹으니 잎이 아니고 꽃이었음이 생각난다.

쑥이 꽃 피기를 또 기다렸다. 늦여름 시기를 놓칠세라 들판으로 가 봉우리가 매달린 줄기를 꺾어와 찜기에 살짝 쪄 말렸다. 말린 꽃대를 잘라 찻잔에 넣고 물을 붓고 기다렸다. 꽃이 부풀자 물은 미색으로 변한다. 찻잔을 입가에 대고 향을 음미하는데 흠잡을 데 없는 첫 만남의 그 맛이다. 잎의 향은 꽃의 순수한 향을 따라갈 수 없나 보다. 그 조그마한 꽃도 꽃이라고 향과 색이 있다니 기이하다.

아들 목사는 차를 사랑한다. 하여 여러 종류의 차를 소장하고 있다. 차 내리는 용기도 다양하다. 커피도 전문가 솜씨로 내린다. 성도들이 일하는 장소에는 언제고 차를 들고 나타난다. 차 한잔의 공감 마당은 성도를 섬기는 목회자의 마음이다. 쑥 차를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알기에 길고도 긴 기다림의 과정을 아들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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