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센터는 잠 잤나
관제센터는 잠 잤나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4.03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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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지난달 29일 수도 서울의 번화가 옆 아파트단지 대로변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 유기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돈을 노린 대담하고도 엽기적, 충동적인 범죄 행각이 전모가 밝혀지면서 온국민이 놀라며 불안해하고 있다.

경찰의 허술한 초동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건이 처음 발생한 29일 밤 11시 48분 범인들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아파트단지에서 40대 여성 A씨를 납치했다. 장소는 CCTV가 작동되고 가로등과 오가는 차량 불빛으로 환한 대로변이었다. 범죄 당시 상황은 인근 행인에게 그대로 목격됐으며 CCTV에도 고스란히 찍혔다.

112에 곧바로 신고가 접수됐으며 경찰은 위급 상황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최고 높은 수위의 범죄 대응 단계인 `코드제로(0)'를 발령했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납치된 여성 A씨는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A씨는 사건 발생 후 6시간 여가 지난 이튿날 30일 오전 6시 즈음에 대전에서 살해돼 대청댐 인근 야산에 암매장, 유기됐다. A씨가 서울에서 납치돼 대전까지 차량에 태워져 끌려가는 동안 범인들은 전혀 아무런 제지를 받지않고 유유히 범행을 저지르고 살해·유기 현장을 떠나 청주로 이동했다.

신고 즉시 코드제로를 발령하고 경찰이 1시간 후에 차량 번호를 특정해 범행 차량을 추적했지만 범인들의 행적을 찾지 못한 것이다.

사건 관할서의 책임자인 백남익 수서경찰서장이 지난 2일 언론에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자 “초동 조치는 잘 되었다”고 답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사건 발생 후 수사에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대전지방경찰청, 충북경찰청 등 172명의 인력이 동원됐다”고 전제하며 “초동조치는 잘 되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량번호 특정이 늦어진 점, 차량번호를 밝혀내고도 추적에 실패한 점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피해자를 납치한 후 고속도로와 국도를 거쳐 차량을 몰고 대전에 도착했다. 이 도주로에는 경찰과 정부·지자체가 설치한 범죄 예방용 CCTV는 물론 과속신호 단속 CCTV 수 백대, 수천대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차량의 번호를 31일 오전 1시 이전에 파악하고도 이날 오전 6시 범행 차량이 대전에 도착해 범인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까지 차량을 좇는데 실패했다.

도주 경로에 설치된 각 지자체나 경찰의 CCTV관제센터가 제대로 작동됐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범행 차량의 번호를 즉각 식별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현장 CCTV를 확보한 후 1시간 여만에 차량번호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이미 오래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화질이 개선된 스마트 CCTV를 교체해왔다. 범행 현장 주변에 번호판 식별이 가능한 CCTV가 단 한대도 없었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차량번호가 특정된 후 범행 차량을 전국에 수배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이 전국 수배차량 시스템에 해당 차량의 번호를 등록한 것은 차량번호를 특정한 지 4시간 여가 지난 31일 오전 4시 57분이었다.

살인사건에서 골든타임은 사실상 없다. 코드제로가 작동되는 순간 경찰은 위기에 처한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황당한 납치 살인사건. 경찰의 무능과 안이함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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