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걸었다
다시 걸었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03.3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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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해파랑 길은 부산 오륙 도부터 동해의 북단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50코스로 도보 여행길이다.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걷는 길,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유혹적이다.

오륙 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렇지 바다는 파도가 쳐야 멋지지” 멀리서 우루루 몰려와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파도를 만들어내는 일 이것이 바다지 라며 연신 감탄을 하며 우리의 선택에 엄지 척을 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도 부산 해운대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와서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무서웠다. 이렇게 많은 물, 끝이 보이지 않은 바다를 처음 보았다. 정말로 짠가 싶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사람들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유럽여행을 하라고 하지만 내 나라를 내 발로 밟으며 다니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싶다.

이 길 여행은 단번에 다녀올 수 없는 여정이다. 3년을 계획했다.

봄과 여름에는 집 안 일을 하고 늦은 가을부터 이월까지 서너 달 걷기로 했다.

파도를 벗 삼아 걷는 발걸음이 춤을 추 듯 가볍고 신났다. 그런데 출발한 지 채 한 시간도 못되어 남편이 탈이 났다.

돌을 잘 못 디뎠는지 허리가 삐끗했다는데 걷지를 못한다.

남편은 아파서 한 발짝도 못 걷겠다 하고, 나는 너무 좋아 포기하기가 싫었다. 다쳐서 아파하는 남편이 안쓰럽기보다는 야속했다. 속으로 눈을 흘겼다.

응급처치를 하면서 간신히 걸어 내려와 병원으로 갔다.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조금 안정을 찾았다. 부산까지 내려갔지만 포기하고 올라와야 했다.

1 코스도 완주 못하고 중간에서 하산한 것이다. 세상사는 일이 그리 순순하게 흘러가게 놔두질 않는 것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남편은 자신감이 넘쳐 자만했던 것이다. 긴 여정을 시작하는데 경솔하면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였다.

귀한 곳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또 한 번 몸소 체험했다. 푸른바다를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바다, 그 바다라고 늘 넉넉한 마음은 아닌가 보다. 때때로 접시 물보다 더 옹졸하게 굴 때가 있나 보다.

`멀리서 왔는데 마음에 안 들더라도 좀 봐주시지.' 바닷길을 허락하지 않으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다시 시작했다. 완주하지 못한 1코스 중간부터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두 발로 내 나라 해파랑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10코스 206㎞ 밖에 걷지 못했지만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고 싶다.

해파랑 길을 걷다 보면 시골 오일장을 만난다. 시장구경도 하고 주전부리로 붕어빵도 사먹으며 유유자적 걸었다.

나이 들으니 참 좋다는 이해 할 수 없었던 말이 이해가 되는 시간이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매일 동동거리며 빨리 뭔가를 채우려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제는 시간을 다투어 처리해야 할 사무적인 일도 아니고 나이 들어 내 나라 동해안 해변 길을 내 발로 걸어 보는 일에 욕심 낼 이유가 하나도 없다.

천천히 느긋하게 세상을 엿보며 걷는 여행이다. 해물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해파랑 길 걷기는 맛 기행이기도 하다.

내가 걸어간 10구간은 다 바닷길만 보여주는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었다.

해변 길, 숲길, 마을길을 걸었다. 아무리 팔자 좋은 인생도 처음부터 마치는 그날까지 어찌 아름다운 해변 길만 있을까. 그것이 세상 이치인 것을.

해파랑 길 걷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 용기, 위로, 감사다. 나는 오래전에 꾸었던 작은 꿈 하나 실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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