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들판 사이로 긴 강이 흐르는 곳 `작천'
넓은 들판 사이로 긴 강이 흐르는 곳 `작천'
  • 조범희 충북도학예연구사
  • 승인 2023.03.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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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범희 충북도학예연구사
조범희 충북도학예연구사

 

`택리지'는 시냇가 마을 가운데 명당을 꼽으면서 시내와 골짜기가 많아 어디든지 물 대기가 편리해서 예로부터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한 곳이 있다. 바로 청주지역 사람들이 `까치내'로 잘 알고 있는 작천(鵲川)이다.

옛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천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선 인조 때 대제학을 역임한 조경(趙絅·1586~1669)은 너른 들판은 50리에 걸쳐 펼쳐졌고 긴 강이 그 가운데를 관통하며 굽이쳐 흐르는 곳이라고 하였다. 숙종 때 대사간을 역임한 임영(林泳·1649~1696)은 양지바른 마을에 물이 둘러서 흘러가고 깊은 산림에 터가 넓어 인심이 순박한 곳이라 하였다.

지금에야 작천은 미호강과 무심천 합수지점의 영역만 가리키고 있으나 예전에는 미호강을 작천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택리지에 작천은 진천 칠정의 동쪽에서 근원하여 남쪽 금강 상류 부용진으로 들어간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작천 서쪽은 목천·전의·연기이고 동쪽이 청안·청주·문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인식도 비슷하였다.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 아방강역고에는 작천 동쪽으로 청주·보은·영동 등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승정원일기'에서도 작천을 찾아볼 수 있다. 정조 20년(1796) 3월 27일 기사에는 충주의 달천, 청주의 작천, 옥천의 적택, 제천의 의림 등이 있어서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라고 기록하였다.

최근 미호강 지명이 일제 잔재이기 때문에 일부 자료에 기록된 동진강(東津江)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동진(東津)은 연기현의 동쪽으로 금강과 미호강이 합류하는 일대에 있던 나루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읍지류에 동진의 영역은 거의 일관되게 조치원부터 금강으로 합수되는 지점까지이다. 즉 동진은 연기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지명이기 때문에 현재 `미호'를 대체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동국여지지'(1656)는 청주의 작천 물줄기가 연기현의 동진으로 합수하여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으며 `연려실기술'은 청주 작천이 남쪽으로 흘러 목천·전의의 여러 냇물과 합해서 동진이 된다고 하였다.

실학자 서명응(徐命膺· 1716~1787)도 `고사신서'(1771)에서 청주의 큰 물줄기는 작천이고 연기의 큰 물줄기는 동진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는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근거이다.

그리고 `미호'의 어원이 연기의 미곶[미꾸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연구도 있기 때문에 `미호'가 일제 식민 통치의 잔재라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 게다가 현재 `미호'라는 지명은 본격적인 일제의 식민 통치 이전에 기록이 나타난다. 1905년 일본 내무성이 조사한 보고서와 1908년 최남선의 `경부철도가'에 기록된 `미호천(尾湖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미호'가 일제의 잔재라는 전제는 성립할 수 없다. 오히려 불확실한 사실관계에 따라 그동안 `미호'라는 지명으로 주민이 공유해 온 지역 정체성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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