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표지판 청소가 제격이다
교통표지판 청소가 제격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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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
김 중 겸 <건양대 석좌교수>

올 봄 얘기다. 파파라치들에게 큰 일거리가 생겼었다. 나오미 켐벨 때문이다. 누구냐고 영국 출신 모델이자 배우다. 슈퍼 스타다.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시사주간지 타임과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녀가 가정부에게 휴대폰을 던졌다. 뒷통수를 강타했다. 네 바늘이나 꿰맸다. 고소당했다. 판결은 공중변소 청소 닷새였다. 최신 유행의 옷으로 몸을 감쌌던 그녀. 청소복으로 갈아 입었다.

청바지에 장화 차림. 위에는 청소부 제복. 손에는 빗자루와 양철 휴지통. 패션모델의 유니크한 패션이었다. 판사가 참 재미있다. 냄새나는 짓 했으니 냄새나는 곳에서 반성하라는 뜻이련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게 비자금 1034억원 조성사건의 판결이 내려졌다. 사회공헌기금 8400억원을 내놓으라. 법을 지켜 경영하자는 내용의 강의와 기고를 하라 했다. 왈 사회봉사명령이다.

이 제도는 당초 영국에서 1972년에 도입되었다. 유럽과 미국은 그 무렵 범죄증가와 치안악화로 몸살을 앓았다. 넘쳐나는 수형자 처리가 고민거리였다. 교정의 효과도 별로 없다는 비판도 거셌다.

죄 지으면 대개 교도소행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나쁜 물 들어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교도소라는 시설 바깥에서 벌받는 방법을 생각했다.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제도가 탄생했다.

이때 사회봉사명령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유죄 확정을 전제로 한다. 분명 죄 지은 자가 대상이다. 다만 교도소라는 시설 대신에 사회라는 시설 외에서 뉘우치게 한다. 현실과 사정을 고려한 결과다.

지은 죄에 대한 반성은 육체노동을 통해서가 전형이다. 오물수거라든가 풀뽑기나 모내기라던가 양로원 같은 곳에서의 일하기다. 제도의 취지가 그렇다. 대법원 예규에도 그렇게 열거되어 있다.

내 몸 움직여서 내 손과 내 발로 해야 하는 일로 한정되어 있다. 원조인 영국도 마찬가지다. 좋은 방안이라며 모방한 나라들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매년 1200억원씩 7년 간 내는 8400억원은 한 개인이 충당하기엔 너무 많다. 결국에는 근로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고려가 있어야 했다. 강연과 기고의 원고는 누가 쓰게 될 지도 살폈어야 한다.

돈이 만사를 해결한다는 나쁜 인식을 또 심어주고 말았다. 위에 선 자가 제 말과 제 글을 아래 사람에게 시킬 여지도 남겨주고 말았다. 보수의 기득권층 봐주기인가 진보의 창의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건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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