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감암주 3
주감암주 3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3.01.26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양 끝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리니

중도(中道)엔들 어찌 안주하랴.

물이면 물, 산이면 산 마음대로 쥐고 펴면서

저 물결 위 흰 갈매기의 한가로움 웃는다.



반갑습니다.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흰 눈이 펄펄 날리더니 이곳 괴산은 하얀 설국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제법실상형 공안인 무문관 제11칙 주감암주(州勘庵主) 3.입니다.

우리는 `무문관'의 11번째 관문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관문에서는 조주(趙州, 778~897)라는 대 선지식이 우리에게 당혹감을 던지며 깨달음의 관문을 열고 있습니다. 11번째 관문에는 조주 이외에 무명의 스님 두 분이 등장합니다. 조주선사가 첫 번째 스님의 암자를 찾았을 때, 그 스님은 별안간 주먹을 들어 보입니다. 여기서 주먹을 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바로 `주먹감자'를 말합니다. 타인을 비하할 때 동서양 구별 없이 쓰는 일종의 욕 같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나름대로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던 조주 선사는 아마도 당혹했을 겁니다.

암자에서 수행하고 있던 무명의 한 스님이 주먹감자를 날렸으니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조주 선사 또한 곧 바로 그 스님을 비하해 버렸던 겁니다. “이 곳은 물이 얕아서 배를 내가 정박시킬 만한 곳이 못 되는 구나!” 다시 말해서 자신처럼 큰 인물이 상대할 가치도 없는 천박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타인이 가하는 모욕에도 당당한 조주 선사의 면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주선사의 당당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조주선사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무명의 스님에게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 통쾌한 복수를 수행했다는 겁니다.

이는 그의 내면에도 나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부지불식 간에 조주선사는 인정 받고 싶은 욕망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서경(書經)'에도“성인도 망념을 가지게 되면 미친 광인이 되고 광인도 망념을 이기게 되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라는 구절이 있지요.

다행스럽게도 조주 선사는 깨달은 대 선지식답게 실수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사실은 두 번째 암자의 한 무명 스님의 스님을 만날 때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두 번째 스님도 조주에게 첫 번째 무명의 스님과 마찬 가지로`주먹감자'를 날립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실수를 자각하였던 조주 선사입니다. 두 번째 스님의 모욕에 맞서서 이번에 조주선사는 상대방보다 자신이 크다는 허영을 부리기보다는 상대방이야말로 자신보다 정말로 크다고 긍정해버리고 맙니다.“줄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으며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구나!”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 상대방 스님이 자유자재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조주 선사는 본래 타인의 인정에도 결코 연연하지 않는 주인공인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제법실상형 공안인 무문관 제11칙 주감암주(州勘庵主) 4.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