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한끼가 천원? 평범한 이웃들이 만드는 `천원의 행복'
점심 한끼가 천원? 평범한 이웃들이 만드는 `천원의 행복'
  • 정윤채 기자
  • 승인 2023.01.17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사단체 `기운차림' 청주가경점 선착순 100명
고정 메뉴 없어 … 그날그날 후원물품 따라 달라져
프로 주방장이 정성껏 만드는 5첩 반상 … 정은 덤

 

김밥 한 줄도 3000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물가 시대. 외식 한 번 하기 무서운 요즘 1000원 한장으로 따뜻한 5첩 반상을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한 봉사단체 `기운차림' 청주가경점이다.

받는 손님은 매일 점심 선착순 100명. 저녁 장사는 하지 않는다. 신진아 단장은 “그 이상 판매하면 주변 상권에 지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며 “1000원을 받는 것도 손님들께 `내 돈 내고 먹는다'라는 당당함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 오전 11시 20분. 영업 시작 10분 전부터 식당 앞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식당 앞에 줄지어선 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1000원짜리 지폐 한장이 쥐여져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씨는 매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1000원인데 맛도 좋고 봉사하는 선생님들도 친절하신데 자주 안 올 수가 있냐”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격이 1000원이라고 음식에 담긴 정성까지 1000원인 것은 아니다. 기운차림에 오르는 모든 음식에는 후원자들의 온정과 봉사자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주방의 `셰프' 격인 정순자 실장은 “반찬 하나, 국 하나 허투루 만드는 게 없다”고 자부한다.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만들겠다”는 신념에서다. 몇십 년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정 실장이지만 기운차림에 온 이후 매일매일 100여인분의 양을 조리하는 프로 주방장이 됐다.

보통 식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일별로 미리 메뉴를 짜는 일반 식당과 달리 이곳의 메뉴는 매일매일이 `즉흥적'이라는 것이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후원 물품에 따라 할 수 있는 요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후원 물품은 기업이나 단체에서 들어오는 경우도 많지만 개인 후원자도 적지 않다. 기운차림에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익명의 후원자들이 있다.

매일 가장 일찍 나와 식당 문을 여는 한혜림 부실장은 출근할 때마다 문앞에 놓인 알 수 없는 박스나 봉지를 발견하는 일이 잦다.

한 부실장은 “어떤 날은 시금치 한 봉지, 또 다른 날은 이름도 모르는 나물 한 박스, 묵은지 한 통 등 이름을 밝히지 않고 몰래 두고 가시는 분들이 계신다”면서 “매장에 직접 찾아와 후원자들이 수줍게 건네는 감자 몇 알, 파 한뿌리도 우리 기운차림에는 너무 소중하다”며 웃어보였다.

정 실장과 한 부실장이 바쁘게 주방에서 움직이는 동안 또 다른 봉사자 홍은주씨(32·청주시 가경동)는 식당 입구에서 손님 맞이에 바빴다. 그는 봉사자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단골 어르신들과 가장 친한 것도 홍씨다. 손님 한명한명 잊지 않고 “오늘도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시고 기운 차리세요” 따뜻한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다.

신 단장은 “기운차림은 밥만 내어드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더 많은 분이 기운차림에서 따뜻한 한끼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밝혔다.

/정윤채기자

chaezip128@cctimes.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