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사다리
욕망의 사다리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22.12.14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산허리에 둥글던 낙엽들도 빛바랜 노트처럼 누르스름하게 빛바랜 채 수북하게 쌓여 있다. 습관처럼 주말이면 오르는 동산, 바람 소리에 마음을 맡겨놓고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을 이고 다니던 동산에 오른다. 서걱서걱 따라오는 경쾌한 리듬, 코끝이 찡할 정도로 매운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듬에 맞춰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올랐다. 잎이 모두 시들어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몽환적인 빛 내림은 고단함을 잊은 채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헐벗은 잔가지에 매운바람이 일고 폭설처럼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 푸석푸석 헝클어진 파마머리처럼 어수선하다. 어디가 등산로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연신 웅덩이에 헛발을 딛는다. 마치 인생의 굴곡 같다. 경쟁하는 것도 아니건만 정상에 오르고자 바삐 서두르는 모양새가 젊은 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겸연쩍어 미적거리며 서성였다. 유유자적 자유로이 오르면 좋으련만 정상 정복이 뭣이라고 앞만 보고 쉼 없이 오르는 것인지 아이러니하다.

정상이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흔들어댄다더니 능선을 타고 올라온 바람은 매몰차게 온산을 흔들어댄다.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며 사정없이 흩날리는 노거수, 사회적 서열인 피라미드 구조처럼 정상에서 당당하게 꽉 움켜잡는 노거수와 눈이 마주쳤다. 칼바람이 휘몰아치자 서글픈 속울음을 토해내듯 윙윙거리면서도 우뚝 서 있는 노거수, 귀촌한 등 굽은 지인을 닮았다. 노거수가 있는 정상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광은 피라미드 형태와 흡사했다.

어렵사리 입사한 사회초년생,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사회구조는 만만치 않았다. 우왕좌왕 마음마저 곤궁했던 시절 무조건 선입을 따라야 했고 그리해야만 되는 줄 알았다. 지인은 성실한 사명감으로 고충도 안으로만 삭히면서 회사생활을 했다. 본시 피라미드식 사회구조의 아래쪽에 자리한 삶은 힘들고 괴롭다. 때문에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의 사다리는 경쟁사회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모두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고자 한다. 지인도 지독한 일벌레로 가장으로서는 뒷전이었고 항시 가정보다는 회사가 먼저였다. 때로는 삶의 목적이 경로 이탈했지만 경쟁사회에서 욕망의 사다리는 지칠 줄 모르면서 자연계의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처럼 피라미드 상단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높이 오를수록 재력과 권력을 쥐며“포식자(捕食者)가 되어 출세자가 되었다.

피라미드 상단 부분에서 안정된 회사생활로 성취한 삶을 추구했건만 계급 사회 현실은 냉정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외롭고 고독한 자리인지라 성공은 하였으나 홀로 있는 듯 외롭고 쓸쓸했다. 나뭇가지 끝처럼 맨 꼭대기 자리는 밑에서 흔들고, 밀고, 당기면서 안정 잡기가 어려웠지만 지인은 모루처럼 따가운 눈초리도 매질에도 무던히 견뎌왔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었음에도 감언설이 나돌면서 더 이상 욕망의 사다리는 올라갈 수가 없어 정년이 멀었건만 명퇴를 해야 했다.

공허한 삶의 연속 빈집 같은 명퇴는 모든 것을 병들게 했다. 가치관, 철학, 취미, 사색은 사치라 여겼던 자신의 삶, 욕망의 사다리를 벗어놓고 보니 허수아비처럼 모양새가 우스웠다. 자신의 삶보다는 회사의 삶이었다는 지인은 일벌레에 불과했던 부질없는 욕심이었단다.

명퇴 후, 겨우겨우 전원택지를 구입해 궁벽한 곳을 가꾸면서 번듯하게 만들며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모나고 각 졌던 마음도 둥글게 다듬으면서 세월의 깊이를 스스로 외면으로 말을 해주는 지인, 양팔을 쫙 벌려 늠름하게 꽉 움켜잡아 끄떡없이 중심을 잡고선 노거수를 닮아가고 있다. 나한의 모습처럼 자연과 사람을 품고서 말이다. 내려놓으면 편하다는 이 말을 터득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지인, 이젠 빈집에 소가 들어왔다며 넉살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