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장정
자전거 장정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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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박 을 석 초등위원장 <전교조 충북지부>

"제 아이와 더불어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겪지 않도록 대학평준화를 이루어 주소서."

몇해 전 신규교사 연수장에서 들었던 말이다. 교직단체를 소개하기 위해 강단에 오른 젊은 초등교사가 평소에 한다는 기도였다.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거린다.

올해 들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학력위조 논란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학벌사회다. 명문대학을 졸업하면 곧장 부와 명예, 권력의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탄다. 그래서 부모나 아이들이나 할 것 없이 명문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전쟁을 혹독하게 치른다. 학교와 사회도 오로지 입시전쟁을 잘 수행하도록 동원형 조직으로 편제되어 있다.

살인적인 입시경쟁은 명문대학 입학경쟁이며, 명문대학 입학경쟁은 더 나은 학벌사회 진입경쟁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근간에는 입시교육이 도사리고 있고, 입시교육은 학벌사회가 뒷받침하고 있다.

학벌사회가 야기하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나 입시체제가 불러오는 교육의 억압과 왜곡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병리현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담론이 일각에서나마 논의되고 있음은 다행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때 잠시 의제화 되었던 대학평준화 논의나 '학벌 없는 사회'라는 단체의 지속적 활동 등이 짬짬이 눈에 띄었던 차다. 올해초에는 유력 대선후보 중의 한 사람까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였다. 한데 최근 국립 경상대학교 정진상 교수와 함께 하는 여러분들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철폐'를 내걸고 2000 전국대장정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학벌사회나 입시체제에 문제의식을 가진 단체와 인사들이 함께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진상 교수는 2004년에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입시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에서 학벌사회를 없애기 위해서는 학벌을 생산하는 소위 명문대학을 없애야 하며, 명문대학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학을 평준화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선 입학생을 공동선발하고 공동으로 학위를 수여하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화를 실현하자고 주장하였다.

뿌리 깊은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온갖 인적, 물적 자원을 투여하는 사회에서 다소간은 황당한 주장일 수도 있다. 학벌사회와 입시경쟁에서 이익을 취하는 세력이 보면 대학평준화 주장은 공산혁명 주장처럼 불온한 것일 게다.

그러나 나는 학벌사회와 입시경쟁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자원의 낭비와 희생을 감안해 본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해 볼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대학평준화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학벌재생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입시경쟁에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대학평준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순회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고행에 다름 아니다. 그저 단순한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시민들과 만나며 홍보하고 강연하며 토론하는 대장정이다. '고개의 가파름을 잘게 부수어 사람의 몸속으로 밀어 넣고,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의 몸이 그 쪼개진 힘들을 일련의 흐름으로 연결해서 길 위로 흘려보내는' 고달픈 일이다.(김훈, 자전거 여행) 아무쪼록 정진상 교수와 함께 하는 자전거 장정이 가는 곳마다 학벌사회 극복, 입시경쟁 철폐라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길 바란다. 9월 11일은 자전거 장정이 청주에 도착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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