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골프로비에 휘둘렸다고(?)
국방부가 골프로비에 휘둘렸다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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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부국장(영동·옥천·보은)>

영동군의 육군종합행정학교 유치는 지역 민·관·정이 하나로 똘똘뭉쳐 투쟁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군수와 군의원, 사회단체장 등 범군민추진위 인사들이 삭발시위로 지역의 결연한 의지를 알리고, 지역 군사시설까지 연루시켜 국방부를 전방위로 압박함으로써 뒤늦게 유치전에 가세하고도 성과를 일궈냈다. 계속되는 인구감소와 경기침체로 지친 군민들에게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안긴 감격으로도 남아 있다.

지난 3일 정구복 영동군수가 군이 소유한 법인 골프회원권이 종합행정학교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해 눈총을 받고 있다. 자신의 골프회원권 사용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을 해명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정 군수가 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그것도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장에서 내세웠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정 군수의 주장은 우선 시기적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영동군이 전남 무주군의 한 골프장 회원권을 매입한 것은 올 4월 6일이다. 국방부는 5일 후인 11일 종합행정학교 영동이전을 확정발표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회원권 매입후 5일 동안 무주골프장에서 국방부의 결정이 좌지우지됐던 셈이다. 역으로 국방부가 군사학교 이전과 관련해 골프로비에 휘둘렸다는 얘기도 되는 데, 그렇다면 보통 이상의 문제가 된다. 중론은 정 군수가 의혹을 비껴가기 위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더욱이 3월말부터 이미 국방부가 괴산군과 영동군에 군사학교 한 곳씩을 분배하기로 결정하고, 장관 결재만 남겨두고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 군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4개월여 동안 12차례 회원권을 사용한 것은 기업유치와 예산확보, 지역화합을 위해서였다고 강조했지만, 엉뚱한 주장을 덧붙임으로써 불신만 키운꼴이 됐다. 골프를 함께 친 상대방의 신분은 사생활보호 차원에서 밝히기 어렵다고 말한 것도 군색한 변명이 돼버렸다.

군수의 부적절한 해명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공유재산 관리를 포기한 영동군의 나태한 행정이다. 군은 1억원에 육박하는 공유재산을 취득하고도 관리대장에 등록조차 시키지 않았다. 언제 누가 사용했는지 기록한 대장도 없다. 군수와 군의장이 회원과 부회원카드 하나씩을 나눠갖고 임의로 사용했으니 담당직원이 일일이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5만 군민을 선도하는 지자체의 시스템이 이래서는 안 된다. 영동군이 군민의 재산이 사유물처럼 취급되는 상황을 방관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군수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그에게도 불충을 범한 셈이 됐다.

누군가 우리나라에는 230여개의 왕국이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예산과 인사에 정책 결정권까지 거머쥔 단체장의 무소불위를 빗댄 말이다. 지역의 성패가 단체장의 개인적 역량과 열정에 달려 있다는 말도 되지만, 단체장의 독선과 일탈을 막을 장치가 시급하다는 점도 함축한다. 군수와 의장이 어깨동무를 해버린 이번 골프회원권 사태는 지방의회의 한계를 다시금 일깨웠다. 외부의 제도적 장치가 구실을 못하면 지자체 내부에서라도 왕조를 타파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골프회원권을 이렇게 무분별하게 관리하면 안 된다는 직언이 있었다면 이번 망신살도 없었을 것이다.

정 군수는 난계국악축제장 입간판이 철거되기도 전인 4일 실·과장 4명을 대동하고 일본으로 출장을 떠났다.

10일간 축제 치르느라 파김치가 된 직원과 주민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도 나오지만, 선진국에서 뭔가 배워 오겠다는 그의 열정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제대로 좀 보고 듣고 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일본의 지자체들도 골프장에서 기업과 예산을 따오겠다는 등의 전근대적 발상을 일삼는지 알아보고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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