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같은 선거판이었으면 좋겠다
축제같은 선거판이었으면 좋겠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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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김 중 겸<건양대 석좌교수>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 한다. 반상회 다녀올 때마다의 집사람 강조사항이다. 차 옆으로 가면서 한 대 갖다 대고 불붙인다. 수 백 번 얘기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못 들은 척 그냥 내뿜는 연벽(煙癖)이다.

승강기를 탄다. 문 저절로 닫히는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한다. 버튼을 누르고 만다. 닫히는 부분만 번들번들하거나 닳고 닳은 걸 보면서 어디 나만 그러냐고 자위하는 조벽(燥癖)이다.

약속시간에는 한 이 삼십분 먼저 도착한다. 상대방이 나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뛰어 온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한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먼저 가서 앉아 있어야 편안해지는 비벽(備癖)이다. 해외를 나간다. 공항에 두 시간 플러스 한 시간 전에 당도한다는 목표 아래 움직인다. 대개 아침 비행기니까 새벽부터 서두르는 급벽(急癖)이다. 동행자는 허겁지겁 허둥지둥 따른다. 미처 담지 못한 필수품을 빠트려서 현장에서 곤혹을 치른다. 컴퓨터를 두드리면서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으면서 비서를 부른다. 사람 앞에 세워놓고 글 쓰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한다. 혹자는 동시다중 업무처리라는 칭송의 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과연 그런가. 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하나인들 진중하랴. 그래서인가. 아는 사람은 내 목소리만 들어도 눈치 챈다. 지금 딴짓 하는 걸 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라는 핀잔도 듣는다. 고치지 못한다. 되질 않는다. 이것저것 함께 하기를 무척 좋아 한다. 관심 분산의 가볍기 그지없는 경벽(輕癖)이다.

어디 이뿐이랴. 커피 마시다가 와이셔츠에 흘린다. 양복에는 글자 지우는 화이트를 묻힌다. 우산은 늘 식당에 놓고 나온다. 눈은 윙크로 오해받기 십상일 정도로 깜박인다. 너무 많다. 창피하다.

그러고보니 연벽(戀癖)도 있다. 사내랍시고 여자 보면 눈길 간다. 엉뚱한 행동에 망신당한다. 체면 구긴다. 교언영색에 솔깃해 한다. 정신 차리자 하지만 본심이야 어디. 이게 다 언감생심 부질없는 욕심 탓이다. 그래도 이제껏 버텨냈다. 바탕에 한 둘의 장점이 있어서다. 향기 하나로 악취 열을 덮고 살았다. 사람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유한다. 내 눈에 보이는 강점보다 남의 눈에 띄는 약점이 훨씬 많다.

정치판에서 듣기 흉한 중상모략이 판친다. 상대 치켜세우면 어디 덧나나.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그럴 바에야 아예 후보자가 범죄경력과 흠을 미리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면 어떨까 망상이다. 그나저나 축제 같은 선거판이었으면 좋겠다. 능력 이전에 품성을 겨루었으면 한다. 품격 있어야 역량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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