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과 정신
폰과 정신
  •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2.09.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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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며칠 전 일이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무심코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보았다. 한참 동안 기사를 뒤적이며 읽다가 앱에서 나왔다. 아직 스마트폰의 밝은 화면을 끄지 못했다. 물끄러미 앱 항목들을 보다가 또 무심코 유튜브 앱을 눌렀다. 평소에 내가 관심이 있던 영화와 드라마 소개 영상들과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화면에 떴다. 나는 졸음을 참으며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좌선은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요즘 인류에게는 스마트폰이 습관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우리의 편의를 위한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정신이 팔리게 되었다. 나 역시 그날 밤에 정신이 팔렸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개교 표어로 `물질이 개벽 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하셨다. 정신을 개벽하지 않고서는 내 정신이 팔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혹자는 정신이 팔리는 것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사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문제다. 그것 역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잊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빠져서 다른 무언가를 잊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집중과 집착은 엄연히 다르다. 집중은 그것을 해야 하는 시간에 오롯이 그것을 하는 것이다. 집착은 그것에 정신이 팔려서 응당해야 하는 다른 것을 잊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루를 살 때 응당해야 할 일들이 있다. 밥을 먹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며, 잠을 자야 한다. 그런데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려 다른 것들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하루의 균형을 깨는 것이다. 처음 균형이 깨졌을 때는 그다지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그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면 다시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려워지고 종국에는 균형이라는 것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불균형의 결과는 몸과 마음의 병증으로 나타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다시 스마트폰 이야기를 하자.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면 내 정신은 피폐해지게 된다. 잠을 자야 할 때 자 주지 않고 내 정신이 쉬어 주어야 할 때 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을 버려야 하는가?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물질이 개벽되었다고 물질을 버리라 하지 않았다. 오직 정신을 개벽하라고 했다. 스마트 폰이 아무리 발전해도, 내가 내 정신을 챙기고 살면 된다. 스마트폰에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게임과 앱들이 많아도 내가 정해 놓은 시간에 정해진 시간만큼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정신을 개벽하자는 말은 내 온전한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온전한 나의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나의 마음대로 쓰는 것이 정신개벽이다. 우리는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이 아닌 감정과 상황에 휩쓸리는 것이 다반사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첨단 과학 문명으로 은 세상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니, 그 과학문명을 선용하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쓰는 마음공부를 하자.

소태산 대종사가 말씀하시었다.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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