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얼굴
야누스의 얼굴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9.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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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마당에서 꽃을 다듬고 들어와 세수한 것밖에 없는데 눈이 따갑고 눈물이 쏟아진다.

눈이 토끼 눈보다 더 빨갛다.

눈물이 나오니 콧물도 쏟아지고 눈을 뜰 수가 없이 따갑고 아프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왜 이럴까 왜 이럴까만 연발하며 응급실로 갔다. 가면서 생각하니 새벽에 설화초를 잘라낸 것이 화근임을 알았다.

새벽에 장갑도 끼지 않고 화단 정리를 했다.

태풍으로 부러진 가지와 뿌리가 뽑힌 꽃들을 손질하였다.

망가진 설화초 꽃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손질해서 빈 절구통에 꽂아 놓았다.

지금 한창 예쁠 땐데다 피지도 못하고 태풍에 꺾인 설화초의 일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한 아름 꽂아놓으니 근사했다. 그래 거기서라도 네 예쁨을 더 발산하라고 내 딴엔 크게 인심을 쓴 것이다.

설화초의 하얀 진액에 독이 있는 것을 몰랐다.

그 말간 얼굴을 한 설화초에게 이런 독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호되게 당했다. 응급실에서 식염수로 눈을 씻어내도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응급실에 누워 생각했다. 봄내 여름내 키워준 보답을 이렇게 하나.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약이 오른다.

그저 저를 예뻐하고 다독여 빛나게 해주려 했던 것인데 그 말간 얼굴을 하고 내 눈을 공격하다니. 진통제를 먹고 겨우 통증이 진정이 되었다.

하긴 사람이든 화초든 자신을 지킬 무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저 꽃만 예뻐서 함부로 대든 내 불찰인 것을 꽃만 탓했다.

자신만의 독이 없으면 이 험한 세상에서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것인가.

아무리 착해 보이는 사람도 자신을 해치는 사람에겐 독을 품어 막아낸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을 한 장미는 가시를 품고 살지 않는가.

그러니 식물이나 사람 누구한테도 함부로 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얼마 전에 뒤통수를 맞은 일이 있었다.

수더분하고 마음 넉넉해 보이는 얼굴, 세상 욕심 없이 사는 말투, 이건 그가 쓴 가면이었다.

내 눈에 보인 그 착해 보임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가 내 뒤통수를 내리쳤을 때도 믿지 않았다.

야누스의 얼굴인 것을 보지 못한 내 분별력 없음을 탓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오래전에도 금전적인 손해를 크게 본 일이 있다.

친구 스님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스님은 내 죄라고 말을 했다. 나는 억울해서 따졌다.

나는 그가 사정이 하도 딱해서 대출까지 해서 빌려줬는데 그게 왜 잘못이냐고 물었다.

상대방이 파고들도록 틈을 주는 것도 죄라는 말씀을 하셨다.

“너는 내가 한 대 때려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참아 줄 것 같으니 때리는 거라는 스님 말씀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

사람은 누구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중인격 일 수밖에 없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독이나 가시를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적인 것은 없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물질이나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못된다. 하지만 적어도 남의 것을 탐내거나 작정하고 마음을 아프게는 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신념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독이 잔뜩 올라 설화초를 노려보고 있다. 우리 마당에서 너를 제거할 것 인가 살려 둘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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