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유감(遺憾)
골프 유감(遺憾)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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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중 겸 <건양대 석좌교수>

주례를 섰다. 하객이 많았다. 내 일처럼 신이 났다. 양쪽 집 손님수가 엇비슷했다. 그러니 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부서 책임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 어디를 갔을까.

몇 주가 흘렀다. 그날 그 책임자는 골프를 쳤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 사람 거기에 미쳐서 애·경사는 거의 외면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결혼은 오늘 결정해서 내일 식을 올리는 게 아니다. 몇 개월 전에 알려진다.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라도 연기할 만한 시간은 충분하다. 일의 성패를 쥔 상대방이라도 직원 결혼식이라면 양해가 된다. 받아주지 않는다면 인간사에 몰인정한 인간이다. 가치 없는 작자다.

당사자에게 더 문제가 있다. 골프를 통해서 해결할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사가 걸린 사항은 평생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골프를 매개로 하기엔 적절치 않다. 진지하지가 않다.

일본에서 근무할 때다. 골프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새벽에 모였다. 싼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왕복 대여섯 시간 차를 탔다. 시간낭비가 자심했다. 이런 식으로 꼭 쳐야 하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몸 움직이기와는 담을 쌓았다. 육신의 혹사다. 조그만 구멍에 조그만 공을 넣기 위해 작대기로 쳐대며 애쓴다. 애처롭다. 선수를 시키면 될 일이다. 박수 치고 훈수 둔다.

나는 인생 자체를 곧잘 망가트리면서까지 골프장에 나가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잘 나가다가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망신살 자초하는 모습이 보기 민망하다.

골프 칠 수준에 있는 사람은 어항 속 금붕어의 신분이다.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위치다. 언제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건 다 눈에 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한다.

평소에는 단지 그럴 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눈과 모든 입이 증거로 작용한다. 잡아먹으려고 대든다. 운동을 하는 목적은 심신의 건강과 편안의 증진이다.

떳떳하게 해야 불안하지 않다. 오가는 얘기가 로비와 야합이라면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뒤가 켕긴다. 악취는 퍼지고 초조한 눈빛은 간파된다. 거짓말로 덮어지지 않는다.

세상을 그런 식으로 살면 손에 더 많이 쥐어진다고 착각하는 인간이 많다. 높이 올라 갈수록 더 심해져 간다. 성공에는 복수가 동행한다. 절제해야 비로소 수성이 가능해진다.

골프 칠 처지가 되면 마음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회사나 남의 돈이 아닌 내돈으로 쳐야 한다. 일과 무관하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박을 뒤로 하고 애·경사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조직은 부하라는 바탕 위에 서 있는 상사의 피라미드다. 맨 위의 장에게는 위가 없다. 제멋대로다. 맨 아래 직원에게는 아래가 없다. 할 말 많지만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죽어지낸다.

중간에 선 자는 잔소리꾼이다. 상사이자 부하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하는 성과달성의 수단이다. 상사는 굽실거리기의 대상이다. 이렇게 돌아가면 바람이 불지않게 된다.

아래서 위로 부는 바람이 통하는 곳을 보면 윗사람이 다르다. 골프보다 직원 챙기기 문화(care culture)가 살아 있다. 골프채 버린다고 죽는가. 보살핌은 지속가능한 공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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