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초상
자유인의 초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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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혜 식(수필가)

녹슨 가위가 한껏 가랑이를 벌렸다. 벌어진 가위 날을 가까스로 번쩍 들고 서 있는 인형이 왠지 위태롭다. 금세라도 가위가 가랑이를 오므리면 인형의 두 팔이 싹둑 잘릴 것 같은 염려에 나는 벽에 걸린 그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가위 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인형을 통해 무엇을 의미하려 했을까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부부 사이를 뜻하려 한 것은 아닐까

부부는 언제고 등 돌리면 남인 것이다. 그러므로 늘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배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잡은 고기는 미끼를 던지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신혼 초와 달리 아이 낳고 수십 년 살 맞대고 살다 보면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소홀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태도는 지향해야 한다. 자칫하면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언제 저 시퍼런 가위 날로 돌변해 부부의 연을 매몰차게 끊을지도 모를 세태다.

요즘 세간에 대입(大入) 이혼이 회자되고 있다. 1990년 이웃 나라 일본에선 남편의 정년퇴임 직후 갈라서는 '황혼 이혼'이 유행했다. 2000년대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었다. 요즘은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에 맞춰 이혼하는 부부들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그동안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꾹 참았다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야 서로 등을 돌린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란다. 그 말대로라면 20여 년 넘게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부 아닌가.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부부이다. 정이란 소 힘줄보다 더 질기다. 한데 그 인연을 어찌 그리 쉽사리 단번에 끊을 수 있단 말인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부부의 경우 상당수 아내들이 이 때 제2의 인생에 대한 갈망이 커진단다. 물론 그 이면엔 남편에 대한 불만이 복병이다.

아내들의 불만은 늘 주위에서 익히 들어 온 말들이다. 남편들이 아내 앞에서 권위주위를 내세움은 물론이다. 손찌검은 예사며 외도까지 하기 일쑤다. 남편들의 이런 횡포에 시달린 여성들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정한 이치다. 남편들의 부당한 대우에 견디다 못해 이혼을 결심한다는 점에선 같은 여성으로서 말릴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 여성들은 옛날과 달리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 얼마든지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여성들의 능력과 자질이 남성들을 훨씬 앞지르고 있잖은가.

한편 남자들은 중년에 이르면 직장에서도 퇴출돼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는 시기이다. 그런 형편이라면 이젠 가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 아내에 대한 사랑도 애써 화초처럼 가꿔야 한다.

아내들도 이혼을 고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마치 이혼이 고통스런 결혼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돌파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그동안 손발이 닳도록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들 양육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던가. 과연 이혼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일까

자유는 본질을 유지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한 자유는 방탕에 가깝다. 자신의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때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다하여 무조건 남편의 가혹한 행위를 참고 용서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혼에 앞서 서로 한번쯤 마음의 거울에 자신들을 비춰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불행한 결혼 생활의 책임이 상대한테만 전적으로 있는 것인지. 또한 이혼으로 얻은 자유가 과연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직도 우리나란 외국과 달리 이혼에 대해선 완고한 정서를 지니고 있잖은가.

페스탈로치는 '아늑한 가정이야말로 인간을 신뢰하게 한다'라고 했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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