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날씨가 좌우합니다.
농사는 날씨가 좌우합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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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 전언론인

연일 비가 오고 있습니다. 엊그제 오전에는 천둥번개에다 비바람이 몰아쳐 대단했었습니다. 이런 날은 비닐 하우스에서 작업을 하는데 비닐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하도 요란해 도저히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손을 놓고 비바람이 퍼붓듯이 몰아치는 들녘을 바라보다 펄펄 날던 기자시절 수해현장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현장을 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으니…" 이렇게 오는 비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청승을 떠는 것인지, 돌아볼수록 후회와 미련이 스믈거리는 데도 마음이 자꾸 지나온 시절로 젖어 듭니다. 거기다 갈수록 머릿속이 보일 정도로 훤해지고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과 팔뚝, 굳은 살이 단단히 박힌 손바닥 등이 자신을 초라하고 작게 만듭니다. 가뜩이나 우중충한 마음을 비바람 치는 대로 가지를 풀어 헤치고 꺾어 질듯 말듯 휘둘리는 나무들이 더욱 울적하게 합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매미소리가 들려 옵니다. 어느 사이 먹구름이 점점 벗어지고 해가 듭니다. 여기저기서 새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풀벌레소리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수풀 어디선가에서 비를 피했던 잠자리들이 몸을 말리려는지 몰려나와 축하비행을 합니다. 오늘 보니 잠자리들의 색깔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가을 수확철이 되면 빨간 고추잠자리가 되고, 서리가 오면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요. 혹시 하는 마음에 약초포지와 밭을 돌아 봤습니다. 생각한 대로 입니다. 잔뜩 달린 고추와 아직 한번은 딸게 남은 옥수수가 비바람에 엎쳤습니다.

고추는 가지까지 찢겨졌고, 옥수수는 뿌리가 들려 제대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옥수수는 그렇다치고 고추는 손해가 큽니다. 이제 막 따기 시작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잦은 비에 병까지 나는 판에 이지경이 됐으니, 고추 많이 심은 농가들은 수심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고…. 저 또한 피해가 많습니다. '백두산 돼지감자', '목등골나무', '목부용' 등 키큰 희귀 약용식물들이 꺾어지고 쓰러졌습니다. 요즘 꽃을 피워 한껏 자태를 뽐내던 것들이 그만 볼품없게 된 것입니다. 씨를 받아 개체수를 늘리려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이 상태로 잘 여물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또 종류별로 포지를 조성하려고 벌써부터 트랙터로 갈아 놓은 밭이 물구덩이에 진창이 돼 수습이 난감한 지경입니다. 이제는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습니다. 농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비때문에 농민들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정도의 비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크던 작던 모두 농민들이 안아야 될 손실입니다. 고추밭을 돌아보다 만나는 이웃들이 "익다 말고 가지가 찢어졌으니 어디 제대로 따겄어…", "고추값 오르것구먼 그랴…", "이제 약 치나 마나여." 등등 한마디씩 합니다. 맞습니다. 농사는 날씨가 좌우 합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이번 장마는 점잖게 지나갔다"고 안심했던 것이 입방정이 된 셈입니다. 비 때문에 휴가기분 잡쳤다는 도시민들이나, 농사 망쳤다는 농민들이나 같을 수는 없습니다. 참 농사짓기 어렵습니다. 비가 계속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농민들은 수심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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