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와 한나라당
화려한 휴가와 한나라당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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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경<부장(천안)>

대선 정국 와중에, 그것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된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광주에서의 그 일을 잘 몰랐던 20∼30대부터, 그때 그 자리에 없었던 40∼50대까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영화는 감수성 예민한 젊은 여성들을 통곡하게 할 정도로 비교적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다. 다소 세기가 부족한 연출력의 한계를 딛고도 연일 '꼭 봐야하는 영화'라는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8일이면 관객 수 400만명을 돌파하고 연일 올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기록을 깨고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한나라당 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벌써 영화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빌미를 제공한 신군부의 군사정권이 만든 당이 민정당이고 그 당이 곧 한나라당의 전신이기때문이다.

영화가 당시 폭압의 강도를 연출하는데 너무 약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내용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라 관객들은 분노한다.

영화에서보다 실제 광주는 훨씬 더 참혹했다. 감독의 의도가 관객들이 '부담없이'영화를 보게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영화보다 더 한 일들이 분명히 있었다.

스크린에 재연되지 않았지만 대검에 찔려 죽은 이들도 있었고 20여명이 탄 버스에 총기를 난사해 승객들이 몰살당한 일도 있었다.진압군이 길가던 여성들을 성희롱하고 여관에 난입해 이유없이 신혼부부들을 구타했다. 그 과정에서 모두 162명이 억울하게 불귀의 객이 됐다.

당시 신군부의 수뇌들은 어떻게 됐을까. 우여곡절끝에 특별법의 통과로 법정에 서게된 전두환, 노태우 등 두 전직 대통령은 무기징역과 1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나마 전 전대통령의 경우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형된 것.

이후 김대중정부로부터 사면을 받긴 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박탈당한 채 광주사태의 원흉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오는 젊은 관객들이, 5.18의 전모를 안다면 그에 대한 감정이 어떠할 지가 불보듯 뻔하다.

지난 4월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건립비가 통째로 철거됐다.

이른 바 한국형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제정로마시대 최고의 형벌인 기록말살형)'다. 국회와 시민단체에서 "'반란수괴'의 이름이 새겨진 독립기념관 비를 철거해야한다"는 여론에 빗발친데 따른 것. 법정에서 단죄를 받았고 사면까지 됐지만 역사의 단죄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광주일보가 1996년 연재한 '5.18 광주 항쟁사'는 다음 같은 결말을 맺으며 광주시민들이 느끼는 5.18의 감정을 전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후 노태우의 집권을 위해) 한국민은 고통스런 역사청산보다 안온한 결탁을 선택했다. 피묻은 정권의 더러운 옷자락을 앞다퉈 덮어주는 일을 즐거워 했다. 그 행복은 도둑의 행복처럼 심저에 가책을 담고있는 행복이었다. 해마다 5월이면 반도의 남쪽, 그 불행한 도시 光州에서 피울음이 들려오는걸 그들은 싫어했다. 애써 외면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민의 광주에 대한 공범의식이다."

얼마전 광주에서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때 강재섭 대표최고위원이 이런 인사말을 했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과거 한나라당 전신이었던 정당들이 호남인들에게 잘못했던 것들에 대해 사과를 한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절대 잊지않고 호남에 더욱 큰 애정을 보내드리겠다."

그가 시인한 당의 태생의 한계때문에 영화 '화려한 휴가'는 한나라당에 좀처럼 예사롭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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