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조흥감이 가르쳐준 교육
반중 조흥감이 가르쳐준 교육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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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수 <충주여자고등학교 교사>

모든 것이 싱그럽기만 하던 1979년 봄. 내 교직생활도 봄처럼 시작됐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품었던 신념, 긍지가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이 나건만 어느덧 교직 경력이 30년이나 됐다.

언제나 나를 새롭게 해 한 점 부끄럼 없는 스승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은 현실에 부딪쳐 조금씩 퇴색해 가고 변질돼 오늘에 이르렀다. 더 훌륭하고 더 열성적으로 후세 교육을 위해 몸바쳐 일한 선배 교육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처럼 글로 펴려니 부끄럽고 민망할 뿐이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충주여고의 학생들도 순수하고 참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했던 시절 학생들은 정말 외모에서나 내면에서나 순수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 자리를 보면 누군가가 벌써 다녀갔던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인다. 깨끗해진 책상, 정돈된 책꽂이,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들꽃이 담긴 화병, 이런 소박하고 순수한 정은 이젠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시절은 지역 학부모들과 한 식구처럼 이야기하고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손을 잡으며 마음을 전하고 했다.

그 뿐인가. 일요일이면 자기 집 농사일도 뒤로 미룬 채 동네 학부모들은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 선생님을 초대하고 허물없이 학교이야기랑, 자녀 이야기, 동네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니 교육이 학교 안팎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그야말로 한 공동체로서 더불어 살던 그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못하는 역사 속의 이야기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어느 늦가을 일이다. 지붕 위에서 뒹구는 박덩이, 멍석 위에 펼쳐진 빨간색의 주머니들, 바람에 살랑이는 고개숙인 벼의 노랫소리, 산에 들에 여기저기 들꽃들의 축제로 인해 시골의 가을풍경은 자연이 선사한 한폭의 그림이다. 그날도 가을의 향연에 기분 좋게 흠뻑 빠져 출근해 책상에 앉으려 하니 조그만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탐스럽게 익은 빨간 홍시가 하얀 습자지에 싸고 또 싸서 3개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정말 먹기가 아까울정도로 고와 먹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물끄러미 한참을 넋놓고 쳐다보니 나도 모르게 옛 시조가 생각났다.

'반중 조흥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은직도 하다마는품어가 반길이 없으매 글로 설어 하노라.'

어버이처럼 여겨 고운 홍시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학생과 병든 노모를 군말 없이 모셔준 아내로 인해 교육에 있어서 '효심'은 가장 근간이 되는 덕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21세기를 사는 청소년들에게 퇴색해 가는 효의 근본이 다시 살아나는 그날을 위해 인간(인성)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길이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세대간에 멀어져 가는 이념의 괴리와 대화의 장벽이 높아만 가는 이 시대. 노부모 모시는 일은 아득한 옛이야기처럼 남의 일로 전락해 버린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 교사가 가르쳐야 일,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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