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원의 철학
2만원의 철학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2.02.09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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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부른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어한다. 오죽하면 99섬 가진 부자가 한 섬 가진 이의 것을 빼앗아 100섬을 채운다는 말이 있겠는가.

내 주머니 채우느라 남의 빈 주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 곳간 채우느라 남의 쌀독이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도 관심 없다.

무관심이 미덕인 세상. 누군가 말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의 삶을 살고 싶다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분수를 지키는 것도 가진 자들의 여유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많이 듣던 얘기다.

그런데 살다 보니 가난은 죄다. 지갑이 얇아지면 친구들을 만나도 괜스레 주눅든다. 어깨는 처지고 목소리도 기어들어간다.

그래서인가 가진 자들은 편법을 써도 당당하다.

국세청은 최근 대출도 부모가 대신 갚아주는 금수저 자녀 등 편법증여 혐의자 227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대상 유형을 보면 부모의 재산으로 대출을 상환하고 명품 쇼핑, 해외여행 등 사치성 소비생활도 부모의 신용카드로 해결하는 금수저 자녀 41명, 본인 명의 신용카드로 호화생활은 물론 고가 주택을 취득했으나 소득 및 자금여력이 없어 변칙증여가 의심되는 자 52명이다. 또한 부담부증여로 물려받은 부동산의 담보대출을 부모가 대신 상환했음에도 근저당권 설정을 유지하거나 부자(父子)간 차용거래를 가장해 증여사실을 은닉한 혐의자 87명, 부모가 신종 호황 업종을 운영하면서 누락한 수입으로 미성년 자녀에게 고가의 재산을 취득하게 한 사업자 47명 등이다.

부모찬스, 조부모찬스를 쓸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방학 기간 시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지 못한다.

인터넷에는 잊을만하면 수저계급론이 등장한다.

2021년 대한민국 계급 측정기는 연소득, 자산, 상속세, 시계, 자동차, 부동산, 취미 등으로 나눠 타이탄 수저를 비롯해 금·은·동 수저, 쇠수저, 나무수저, 흙수저로 분류한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가치도 달라진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지하철 택배원이자 블로거인 조용문씨가 출연했다. 1941년생 올해 나이로 82세인 그는 12년째 지하철 택배원 일을 하고 있다. 파워블로거인 그는 택배일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지하철 택배원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조용문씨가 일상을 기록하는 이유는 한때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32년 한국조폐공사에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뒤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망했다. 사업 실패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 증세가 나타났고 사랑하는 가족, 직장, 일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치료 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기록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코로나로 요즘은 택배 일이 줄어 하루 2~3건에 불과해 그의 수입은 2만원 정도다. “대기하는 시간도 있고, 거기에 비해 2만원은 적지 않냐”는 진행자 유재석씨의 질문에 그는 답했다. “2만원도 큰 돈이라고 생각한다. 안 움직이면 까먹는 돈이다”라고. 방송 출연 1주일이 지난 요즘 그의 블로그 방문자는 2만7000명이 넘는다. 1만5000명이 넘는 블로그 이웃과 인연도 맺었다. 조용문씨는 응원의 선물로 양말, 홍삼, 떡 등을 보내준 이들을 향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글을 남겼다.

편법으로 수십억원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들보다 손에 쥔 돈이 2만원이어도 당당한 조용문씨의 삶이 더욱 값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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