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빼고 광 내고 … 이제는 옛말이죠”
“때 빼고 광 내고 … 이제는 옛말이죠”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2.01.27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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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이용원 김승경 사장 50여년 외곬 영업
녹슨 바리깡·낡은 거울 … 시간의 흔적 그대로
“손님 없는 명절 옛날과 딴판 … 대목 사라져”
청주시 율량동 덕성이용원 김승경 사장이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연지민 기자
청주시 율량동 덕성이용원 김승경 사장이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연지민 기자

 

설 명절이 다가오면 반드시 하던 일이 있었다.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깨끗이 닦는 일과 단정하게 이발하는 일이다. 새로운 한 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각오로 임했던 것이다. 설밑이면 목욕탕과 이발소·미용실에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만원을 이루던 풍경은 이제 옛 시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시대가 변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가난했던 설풍속도가 달라졌지만,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덕성이용원을 찾아 빛바랜 설날의 풍경을 돌아본다.

청주시 율량동 덕성초등학교 앞에는 단층 기와건물의 덕성이용원이 있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긴 시간을 버틴 건물은 이발소 회전등이 `영업 중'임을 알리고 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간을 돌려놓은 듯 50년 전 이발소 풍경이 펼쳐진다. 연탄난로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 손님이 앉아 기다릴 수 있도록 꾸민 구들장, 제 각각의 머리 깎는 의자가 이발소의 오랜 이력을 말해준다.

그리고 열여섯 살에 이용 일을 시작했다는 주인장 김승경 사장(78)이 손님을 맞아준다.

한산한 이발소 풍경이지만 내부는 정감 넘치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고장 난 드라이기, 바리깡, 공중전화까지 오랜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옛날과 요즘 이발소 모습이 어떤지 여쭙자 “설날요? 옛날과는 딴 판이지요. 대목 없어진 지 오래 예요. 그냥 문 열어두고 손님이 오면 오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낡은 거울 앞에 붙여놓은 이발 12000원, 이발&염색 20000원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꾸밀 것도 없이 날 것 그대로의 현장이다.

김 사장은 “60년대는 머리 깎는데 30원이었어요. 지금은 12000원이니 많이 오른 거지. 나는 나이가 많아서 정가보다는 적게 받아요. 돈을 버는 것보다 내가 평생 일하고 살아온 곳이니까 문을 열고 있어요”라며 서랍 속에서 봉지에 싸둔 50여 년 된 녹슨 바리깡과 마스크를 꺼내 보였다.

“옛날에 썼던 바리깡하고 마스크인데 기념으로 갖고 있어요. 50년 넘은 것들이니 나랑 같이 나이를 먹은 거죠. 일을 배울 때 친구들 머리 깎아주었는데, 깎다 잘못되면 아예 빡빡 밀었어요”라며 “요즘은 일하기 쉬워졌어요. 옛날에는 머리만 깎지 않고 감겨주고, 드라이까지 다 하고 갔는데 지금 그런 걸 안 하니 편해요”란다.

미용실이 많아져서 장사가 덜 될 듯한데 오히려 고맙단다.

김 사장은 “미용실이 너무 고마웠죠. 까다로운 꼬맹이 손님들이 다 그쪽으로 가잖아요. 찾아오면 안 할 수도 없는데”라면서 “이 자리에서 네 남매를 다 키웠어요. 이제 나이가 들어 일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오후 1시까지만 하는데 젊은 사람들도 오고 단골도 옵니다. 여기서 50여 년 넘게 하다 보니 세상을 떠난 단골도 많아요. 놀면서 쉬면서 일합니다”고 덧붙였다.

어린 나이에 덕성이용원에서 일을 배우고 군대에 갔다 온 후 1970년대 덕성이용원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용원과 집이 김 사장과 한몸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삶이 건물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낡고 작아도 덕성이용원의 문을 여는 이유다.

“여기 땅은 교육부 거고 집만 내 거예요. 그래서 집은 교육부에 기부했어요. 내가 일을 안 하면 철거할 거예요. 건물이 오래돼서 기록을 남긴다고 여러 차례 조사해 갔는데 영 소식이 없어요”라며 “기부하면서 내가 일 할 때까지는 절대 허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언제까지가 될 줄 모르지만 하는 데까지 일 할 생각입니다”고 밝혔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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