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반지아 수필가(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01.23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수필가(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수필가(청안초 행정실장)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책이 있다. 겉표지는 순정만화 같은데 제목이 너무 기괴해서 이름을 보니 낯선 일본 작가 이름이다. 눈에 확 들어온 제목 덕분에 깊은 고민 없이 구매했다. 몇 년 전 일이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멜로는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상한 제목에 홀려 흔해빠진 고등학생들의 청춘 멜로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시나, 여자 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는 설정부터 남자 주인공이 `공병일기'쉬운 말로 하자면 `투병일기'를 우연히 주워서 인연이 시작되었다는 전개까지 너무 뻔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책을 괜히 구매했다는 후회가 들고 있는데 스릴러 소설처럼 범인을 추측할 필요도 없고, 인문학 책처럼 깊은 이해를 위해 진중히 생각을 할 필요도 없기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의 죽음은 허망했다.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작가가 복선을 깔아놨지만 나는 눈치 채지 못했고 그랬기에 하마터면 책을 떨어트릴 뻔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죽음이어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왜 여자 주인공을 죽이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독자를 뻔한 소재뿐만 아니라 황당한 전개로 농락하는 이 작가에게 화가 나서라도 책을 끝까지 읽기로 결정하고 속도를 냈다. 그런데 나는 그저 독자일 뿐이었다.

작가의 진짜 이야기는 결말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곗바늘이 늘어진 듯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속독은 사치였다. 그리고 결국, 마치 핫초코를 충분히 휘젓지 못해 밍밍한 윗부분을 마시다가 다 마실 때쯤 마주한 컵 바닥에 숨어 있던 너무도 진한 달콤함을 마주하고 정신 못 차리듯 남자 주인공의 터져버린 눈물에 나도 모르게 같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전개였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가슴 아파한다는 10대 소녀도 아니고 불혹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나이에 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비록 시작은 실망으로 했어도 결말은 만족으로 끝내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고,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함도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일본을 하나의 다문화로 인정하고 그 문화를 맘껏 받아들이기에 거리낌이 있지만 나는 원래 일본 책도 가리지 않고 읽었었다. 그들의 문학이 훌륭하고 작가들의 사상이 멋지고 문체가 기깔나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책에는 그들만의 느낌이 확실하고, 메시지가 정확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봄'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성향의 남자 주인공이 `벚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말 한 송이 꽃같이 화사한 여자 주인공을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 그 과정 속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자 주인공이 위안을 받고 마음을 전해 받는 이야기가 끝이 아닌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에서 툭툭 던져지는 보석은 책을 직접 읽어야 주워담을 수 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에서 너에게 산다는 건 어떤 일이냐고 묻는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주인공은 이런저런 말 사이에 이와 같은 말을 한다. “혼자만 있으면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없어, 타인과의 관계가 바로 산다는 거라 생각해”일본말로 나에게 스며든 이 진리가 다시 그 나라에 전해져 서로의 문화를 죄책감 없이 그전처럼 한껏 즐길 수 있는 시절이 다시 오길 희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