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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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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은 악법일 뿐이다
문 종 극<편집부국장>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이다.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탈출대신 죽음을 택하면서 남긴 말이다.

물론 이 명언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로마의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가 남긴 말을 일제 강점기때 한 일본인 학자가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으로 잘못 해석한 채로 우리나라에 전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은 준법질서 확립이라는 허울좋은 명목아래 한때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알려져 있는 만큼 그 활용도도 눈부시게 활발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에 유신헌법 둥 잘못된 법을 지적하는 저항세력들에게 정부는 이 명언을 들이대며, 악법을 지킬 것을 강권하는 등 '악법도 법이다'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기도 했다.

그 후로는 한동안 그다지 강조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요즘 장기화 되고 있는 이랜드 사태를 보면 오랫동안 잊었던 '악법도 법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악법을 만들어 놓은 정부가 그 악법을 지키라며 공권력을 주저없이 투입하는 형국을 보면 '준법질서 확립'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사용자의 악용소지를 들어 오히려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한다며 반발하는 노동계에 정부는 사용자인 기업들이 법 취지를 잘 살릴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으로 접근하면서 시행에 들어간 법이 출발한지 한달도 채 안 된 시점에서 터진 이랜드 사태로 분명한 악법임을 증명해 보였다.

이같은 문제는 최근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뉴코아·이랜드 공동대책위원회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이랜드 노사문제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50.4%가 '이랜드 노사갈등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응답한데 이어 '비정규직을 남용한 이랜드 그룹의 책임' (27.2%), '비정규직 문제로 과도한 요구를 내건 노조의 책임'(13.1%)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또 이랜드 노사문제에 공권력을 동원한 것에 대해서는 '경찰력에 의존해 강제로 제압한 것은 잘못이다'는 의견이 60.5%인 반면 '노조의 불법행동에 대한 정당한 법집행이다'라는 의견은 32.8%였다.

이랜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56.7%가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며 '노조가 회사의 요구를 수용해 단체행동을 중지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32.6%였다.

이와함께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제시하는 이랜드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는 응답자 60.3%가 '비정규직에 대한 외주용역화를 철회하고 고용을 보장할 것과 노사 양측의 민·형사상 고소를 취하하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더욱 눈여볼 것은 이 조사에서 국민들은 비정규직법 논란에 대해 73.6%가 '문제점이 많으므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현행법을 그대로 두고 잘 지키도록 하면된다'는 의견은 18.9%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덧붙여서 국민들은 비정규직법안의 입법방향에 대해 55.0%가 '비정규직의 권리보장과 차별해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도 좌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은 철저한 준법정신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그같은 악법이 고쳐져 다시는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시행에 들어간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약자인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더 이상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이제 숙고를 해야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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