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먹고 싶으면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1.12.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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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수박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느닷없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과일가게에 간다거나 마트에 간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요즘 같아선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책 `수박이 먹고 싶으면'에서 농부는 이른 봄 쟁기질로 밭을 깨우고 겨울이 말끔히 물러가기를 기다린다. 살구꽃 피는 완연한 봄이 오고 나서야 구덩이를 파고 까만 수박씨 서너 개를 누인 후 흙 이불을 살살 덮어 준다. 싹이 나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도록 잡풀을 뽑고 진딧물을 훑어준다.

씨 뿌리고 흙 덮어줄 때는 잘 자라라 조용조용 읊조려 주고, 싹을 낼 적엔 날마다 밭을 드나들며 물 주고 정성을 쏟는다. 이윽고 떡잎이 고개를 내밀면 무심한 듯 모른 척해주며 속으로는 아이처럼 기뻐한다. 농부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너무 지치거나 더위를 먹지 않게 가끔 원두막에 올라 시원한 미숫가루 물도 마시고 낮잠도 한숨 자며 수박이 익기를 기다린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줄무늬 또렷해지고 덩굴손 마르고 꽃자리 우묵해질 때 드디어 수박은 두들기면 통통 맑은소리 나도록 영근다.

수박이 먹고 싶다면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기다려야 하고 자연과 농부의 땀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수박이 먹고 싶으면 그저 돈이 필요하다고 여길 뿐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재화들이 자연과 누군가의 정성으로 길러낸 것들일 텐데. 삶을 위한 살림살이가 돈으로만 환산되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 괴산 백봉초 장암분교 폐교를 활용해 조성한 임원경제 해암캠퍼스를 다녀왔다.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실학의 정점인 풍석 서유구가 16지 113권을 저술한 전통실용문화 백과사전이다. 50여 명의 고전학자들이 15년 넘게 연구 번역하고 있고 아직도 번역이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임원경제지」는 조선 사대부의 통렬한 반성 위에서 당시 의식주와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실증적 지식과 체험을 오롯이 담고 있다.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과 같은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일상 실용지식까지 다루고 있다. 음식 관련 내용을 정리한 「정조지」를 근간으로 쓴 「조선 셰프 서유구」라는 책이 있을 정도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을 떠올리게 한다. 도넛은 인간의 사회적 기초와 지구의 생태적 한계 사이에 도넛을 닮은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을 뜻한다.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조선의 실학자와 21세기 경제학자의 가르침이 기후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삶을 위한 살림살이로서 경제를 돌아보게 한다.

영글대로 영근 수박이 몸뚱이를 뒤척인다 싶을 때, 농부는 성큼성큼 밭으로 들어가 수박을 똑 따낸다. 농부는 손을 크게 저어 사람들을 부른다. 수박 먹고 싶은 이는 누구든 반가이 불러 둘러앉힌다.

모두가 경제와 기술 성장이 환경을 위협하도록 방관하지 않고 누구도 사회적 불평등과 식량의 부족함을 겪지 않을 때, 농부는 때에 맞춰 수박을 기르고 여럿이 나누어 먹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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