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풍경
여름의 풍경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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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한 신 구 <교사>

모처럼 한적한 마음에 소파에 깊숙이 잠겨 글이라도 한 줄 읽으려니 여기저기 방해꾼이 많다.

"차아-름, 차아-름."

식구들이 나가버린 하얀 공간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시원한 매미의 합창소리가 싱그러운 여름 아침 산으로 나를 유혹한다. 6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습기차고 어두컴컴한 땅 속에서 열다섯 번의 탈바꿈을 하며 은둔의 세월을 힘겹게 참고 견디어 와, 드디어 매미로 부활한 굼벵이의 환희는 얼마나 놀랍고 가슴 벅찰까. 그런데 그 생의 길이가 채 한 달이 못된다 하니 너무나 안쓰럽고 소중하다. 짧지만 멋지게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는 매미. 엄지 손가락만한 작은 몸으로 온 여름을 떠들썩하게 존재를 알리며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매미가 대견하다. 그렇게 짝을 구하여 자기들이 앉아 노래하던 나무껍질 뒤에 알을 낳고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매미의 일생. 삶이 하루뿐인 하루살이도, 한 달 뿐인 매미도, 팔십년인 인간도, 천년의 세월을 살다간다는 거북이의 일생도 따지고 보면 다 같은 한 생애이긴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어머니 자궁에서의 열 달이 끝이 아니고,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새 삶이 시작되듯이, 이 땅의 죽음은 다른 삶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벌써 산길 가 조그마한 밭엔 보라색 도라지꽃이 한창이다.

어린 시절 듣던 도라지 꽃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도라지 꽃은 보랏빛 언니가 좋아하던 꽃

나리꽃은 분홍빛 내가 좋아 하는 꽃

언니는 보랏빛 저고리 나는 분홍빛 치마….'

여름방학, 예능발표대회를 준비하러 교정에 들어서면 청아한 목소리로 곱게 울려 퍼지던 도라지꽃 노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갈 때까지 몇 번을 들어도 싫증나지 않던 노래다. 그 후부터 산모롱이에 피어 녹음과 어우러진 흰 색, 보라색 도라지꽃을 보면 그 노래가 가슴에 잔잔히 물결 쳐 온다. 목청을 가다듬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비탈길을 오르니 어느새 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차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연신 땀을 닦으며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언덕을 오르는 아저씨, 온몸을 휘두르며 훌라후프를 돌리는 아줌마, 삼삼오오 모여 앉아 깔깔거리며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줄넘기, 윗몸일으키기, 평행봉.

삶은 아름답다. 굼벵이의 고단한 삶도 아름답고, 화려한 매미의 시절도 아름답다. 아기들의 잠을 깨우는 모기들의 일생도, 아기를 잘 길러 홀로 서게 하고 주름투성이의 미소만 간직한 채 지난날을 추억하는 우리의 다정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하루도 참 아름답다. 오늘밤엔 손전등을 들고 산에 올라야겠다. 부활의 꿈을 안고 수직의 높다란 나무 위를 향하여 무거운 몸으로 기어오르는 굼벵이의 처절한 몸부림을 훔쳐보고 싶다. 등이 갈라지는 마지막 고통을 견뎌내고 날개를 활짝 펴는 매미의 탄생을 과연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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