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을 위한 도시
‘사장님’을 위한 도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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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흘러간 노래 한 곡 듣는다.

「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고 살짝 불렀더니/ 열에 열 사람 모두가 돌아보네요./ 사원 한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데/ 왜 이렇게 사장님은 흔한지 몰라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몽땅 사장님/ 그렇지만 사장님은 외롭고 괴로워// 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고 불렀는데도/ 그중 한 사람 말없이 그냥 가 길래/ 깜짝 놀라서 보았더니 전무라나요/ 전무님들도 올라가면 사장이 되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몽땅 사장님. 그렇지만 사장님은 외롭고 괴로워」



관록의 가수 현미가 부른 이 노래는 제목이 <몽땅 내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 몽땅 내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 몽땅 내 사랑」이 후렴으로 되어 있다.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의 이 노래가 발표된 해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53년 전인 1968년.

내가 이 노래를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논란이 되었던 음식점 허가 총량제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는 지난 달 27일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음식점 허가 총량제가 나쁘지 않다.”며 “마구 음식점을 열어 실패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며 좋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이후 당장의 `공약' 대신 `차차 논의해 볼 필요성'으로 후퇴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 수면 아래에 머물고 있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은 지금 세상에서 보통명사가 되어 있다. 53년 전인 1968년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518달러에 불과하고, 청와대 습격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로 나라 전체에 불안이 심각했던 시절이다. 그 시기에 `몽땅 사장님'을 풍자하는 대중가요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 `사장님'에 대한 집념은 53년의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었으며, 나라가 당당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커다란 욕망으로 자라고 있다.

문제는 반세기가 넘는 동안 `사장님'을 향한 탐욕이 갈수록 커지는 까닭이 `노동시장의 불안' 때문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점 개업으로 대표되는 자영업 시장의 진출은 대체로 정년이거나 조기를 막론하고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힘들고 고단한 일과 고질적인 상하 또는 갑과 을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택하게 된다. 대기업이거나 공무원, 전문직이 아니면 고용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가 음식점 창업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서비스업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산업구조의 모순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날이 오긴 오네요”라는 반가움으로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질 터이나, 이런 희망과는 별개로 자영업의 실패는 끊임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길을 걷다가 무수히 내걸린 `폐업', `임대'의 팻말은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끔직한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어떤 음식점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장소에, 저런 메뉴로 식당을 열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만큼 허술한 곳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음식점 총량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정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네거티브적이다. 다만 창업비용과 비싼 임대료, 그리고 권리금에 이르기까지 실패와 폐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과 낭비가 사회의 황폐화와 비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생각은 어째서 하지 못하는가.

`총량제'라는 규제에 앞서,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일을 `도시'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음식점 창업과 관련된 모든 면면을 세심하게 파악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가칭)창업사관학교'를 제안한다. 성패를 좌우하는 시작점인 시장성에 대한 판단은 `도시'가 가장 적확하다.

`총량제'가 진입 장벽이라고 무조건 우길 것만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러워하는 안정적 노동시장 중에 총량제가 아닌 것 있느냐.

다만 그 `총량제'가 우월적 신분 과시이거나 지배로 흐르지 못하게 하는 일은 모두 사람의 몫이다. 「`사장님'을 위한 도시」가 바로 준비된 도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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