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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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천심입니다
김 익 교<전 언론인>

요즘 농촌의 하루 일과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한 사흘 간격으로 비가 오니 풀들이 보통 잘자라는게 아닙니다. 논이고 밭이고 간에 한 이틀만 내버려두면 한뼘씩 자랍니다. 물론 제초제를 안 뿌린 농경지에서만 입니다. 오며 가며 뽑아도 깎아도 그때뿐, 풀은 끊질기게 새로 나고 또 자랍니다. 한참 정신없이 풀을 뽑다 보면 작물을 뽑을 때도 있습니다. 잡초에 치이지 말고 잘 자라라고 한다는 것이 그만… .

오늘도 그랬습니다. 며칠 전에 제초작업을 한 국화포지에 듬성듬성난 풀을 뽑다가 국화 서너포기를 같이 뽑았습니다. 다시 그 자리에 심기는 했지만, 식물은 한창 자랄 때 뿌리를 다치면 고사하거나 성장이 더딥니다. 이제 여름 한복판에 와 있습니다. 뙤약볕을 피해 아침참에 일하다가 한낮 매미소리에 취해 낮잠 한숨자고 저녁참에 다시 일을 합니다. 그래서 농촌의 한낮은 인적이 드믈고 적막감마저 듭니다. 새소리, 바람소리에 실려가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무료하지만 그속에 같이 묻혀가는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청원연꽃마을'인 이곳 '방아다리'에 연꽃이 피고부터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농촌 특화마을로 지정돼 차별화된 먹을거리, 볼거리, 체험거리가 도시인들의 구미에 맞았나 봅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손님들이 오십니다.

엊그제는 일을 못할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전화를 받기는 처음 입니다. 왜냐하면 주초 TV방송에 우리마을이 소개되면서 여름휴가를 앞둔 도시인들의 문의가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이장님, 사무장님뿐 아니라 저까지 전화 폭탄을 맞은 것은 제가 민박 시설인 황토 찜질방을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풀 뽑으랴, 전화 받으랴 한 이틀 엄청 바빴습니다.

오늘 아침 저와 아내, 손녀 셋이 집에서 좀떨어진 밭에 들깨를 심었습니다. 밭일에는 꼭 따라 다니는 손녀가 성가시고 일에 지장을 주지만 하는 짓거리가 밉지가 않습니다. 이건 뭐고, 저건 뭐냐고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는 네살배기 외손녀 '보경'이는 오늘도 저와 아내에게 열심히 들깨모를 배달 하느라 바빴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웅큼씩 가져다 주는 들깨모를 받아 심다보니 이 어린 것이 한몫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보경아 빨리 가져와 심을게 없어, 옳지 잘한다." "여기도 흘리지 말고 조금씩 가져와." 저와 아내의 주문에 아이는 신이 났습니다. "예 할아버지 나 일 잘하지요…." 그러나 이 평화도 잠시,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더니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어른 아이 모두 물에 빠진 생쥐꼴이돼 쫓기다시피 집으로 왔습니다.

이 비를 끝으로 장마가 물러간다고 하지만, 농민들은 그래도 조금은 불안해 합니다. "올해 같이 점잖게 지나간 장마가 없었다"고 하면서도 혹시나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농심입니다. 하늘을 믿으면서도 무서워 하고, 땅을 아우루면서 고마운줄 알고, 땅냄새를 제대로 맡고 더불어 살줄아는 농심이 곧 천심인 것입니다. 지금 이땅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박터지게 싸움박질 하시는 분들에게 한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괜한 풀섶 건드려 뱀 나오게 하지 마시고 농촌에 가서 풀 한 번 뽑아 보셔 정신이 버쩍 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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