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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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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개
괴산중학교 2학년 박민지

매주 한번씩 엄마는 꼭 그때쯤 돌아오곤 하셨다.

내가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슬며시 떴을 때, 지치신 엄마의 모습과 함께 금방이라도 구름이 되어버릴 듯한 희뿌연 안개를 볼 수 있었다.

"엄마, 언제 왔어"

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첫마디를 꺼내면 엄마는 방금 전에 도착했다며, 엄마의 고되었던 저녁을 대신 이야기해 주는 무겁디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발걸음을 이부자리가 있는 곳으로 옮기신다.

엄마는 옷가게를 운영하신다. 그래서 거의 매주 한번씩 동대문, 남대문에 있는 새벽시장으로 물건을 하러 가신다. 이런 엄마의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진다. 장사가 잘 돼서 옷들이 쏙쏙 빠져야 가는 새벽시장이지만, 그만큼이나 엄마의 어깨는 더 무거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꿈속을 헤매고 있을 때, 엄마는 돌덩이 같은 커다란 옷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 집, 저 집을 분주히 다니실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한 뼘, 한 뼘 자리를 잡은 안개에 젖으시며 말이다.

엄마가 새벽시장에 가시는 날이면 항상 엄마와 함께하는 안개.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때문에 나에겐 아직까지 생소하기만 한 안개지만, 나와는 다르게 엄마에게 안개는 추울 때나 푹푹 찌는 더위에나, 그리고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동고동락을 함께 하는 오랜 친구쯤 되지 않을까

엄마의 고되었던 하루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밝은 해의 모습보다도 먼저 얼굴을 내밀어 이불처럼 포근히 자리하고 있는 친구이자 희망인 안개.

나에겐 그저 희뿌연 얇은 구름이었는데, 그 속에서 엄마는 희망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 안개 뒤에서 서서히 드러낼 오늘 하루를 상상하시겠지. 엄마가 힘들게 해 오신 옷들을 보러 오시는 손님들과 옷이 예쁘다며 사 가실 손님들의 모습을.

엄마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안개,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에게 지금까지 무의미하게만 여겨졌던 그것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지금 나는 중학교 2학년.

많은 꿈과 희망을 가졌고,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해야 하는 수업과, 쪽지시험부터 매학기마다 치러지는 시험들을 비롯해 내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수많은 것들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지금은 비록 내 어깨 위에서 젖은 솜처럼 존재하고 있어 그 무게를 이겨내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결국은 넓은 하늘의 안개가 걷히듯이 나의 미래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 무겁게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미래를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나에게는 그저 '안개' 그 자체였던 것이 이제는 엄마에게 그러했듯, 나에게도 미래를 위한 참된 고통의 존재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는 엄마가 새벽시장에 다녀오시는 날이면 엄마의 희망이자 나의 미래를 보여줄 안개와 함께 엄마를 기다리고 싶다.

이제 '안개'는 엄마와 나에게 작은 행복을 열어 줄 소중한 열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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