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것
아프다는 것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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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병 때문에 한가할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네, 마음이 편한 게 약이지 달리 처방이 있겠는가.”(因病得閒殊不惡 安心是藥無方)

몸이 아픈 지인에게 위로랍시고 전해주는 말이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문장에 불과하다.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도시는 1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병원이 즐비하니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다치거나, 늙어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고 건강한 기운이 마비되는 온갖 질병의 괴롭힘은 평소에도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습격이 6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아프거나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 달여 전에 아주 가까운 지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호방한 성품에 마음이 참 착한 그는, 나를 비롯해 몇 명이 적어도 열흘에 한 번 정도는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할 만큼 간곡한 우정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이제 갓 50줄에 들어선 그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신체 특정 부분이 마비되고 일그러지는 고통을 얻게 되었다. 아프지 않은 나는 그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조금 양보해서 그가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 안쓰러워하거나 가슴 한 구석이 아리다 해도 그와 그 가족들의 상심과 쾌차의 간절함에 이를 수 없다.

하여 나는 아픈 그를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주겠다는 움직임을 망설이지 않을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고 있다. 문득 생각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치료의 정도와 안부,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미세하게 어눌하고 떨리는 그의 상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일그러진 몸과 마음을 어설프게 읽어내려 애쓰고 있고, 어느 정도 치유가 된 이후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는 위로가 될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한 달여 만에 그를 만났다.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를 만난 나는 마스크를 용기 내어 벗은 얼굴로 보통의 음식을 씩씩하게 먹는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아직 고통의 흔적은 남아 있고, 아픈 몸을 치료하면서 생긴 자국이 피부에 선명하나, 그는 용기를 전혀 잃지 않고 있다. 그런 그의 당당함에 아프지 않은 내가 큰 위로를 받았고,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이 가벼웠고, 가슴이 따뜻했으니, 아픈 이에게 받는 위안의 크기를 비로소 가늠할 수 있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자가 격리되거나 중증환자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팬데믹의 처지만 아픈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온갖 아픈 사람과 아픈 사회, 병든 욕망과 숱하게 마주해 왔으나, 다만 당사자가 아님으로 인해 위로하지도 위로받지도 못한 채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 어느 생각이 몸서리칠 만큼 아팠으며,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지만 그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생명은 없다. 그 찰나의 고통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병색이 완연할 때가 되서야 세상을,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위로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위로하는 사람과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상은 없다. 아픈 사람이 먼저 다가오는 용기로 인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위로도 있다. 갑갑하고 무더운 방호복을 입고 중증 환자와 화투를 치며 남은 생을 즐길 수 있도록 헌신하는 간호사로부터 받는 아픈 이들이 받는 위안도 세상에는 함께 있다.

그러니 아픈 것 천지인 코로나19의 깊고,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기까지 어쩌면 우리가 애써야 하는 일은 마음을 다독이며 속도를 줄여 쉬어가는 일일 수 있겠다.

“병 때문에 한가할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네. 한가함을 얻고서야 진심(참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진심(참마음)은 필경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 조선 숙종때 학자 최창대의 진심음(眞心吟)을 새기며 지금은 우리가 서두르지 말아야 할 아픈 지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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