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가고 절창은 남아
시인은 가고 절창은 남아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6.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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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시창작교실의 수업이라는 것이 이름난 시인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 소위 시 잘 쓰는 법, 다시 말해서 창작 이론에 곁들여 시를 인용하고 해체하며 필사와 모작도 서슴지 않는 것이어서 김소월, 박목월, 서정주 등 지난 세대들보다 요즘 시인들의 시를 주로 다루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얼굴은 몰라도 많은 시인 이름과 작품은 어지간히 기억하게 된다. 우리 수업 시간에 많이 등장하는 시인 중 한 분이 문인수 시인이다.

그는 절제된 시어를 사용하여 외롭고 소외된 존재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연민을 담은 시를 씀으로써 서정적이고 사변적이면서 성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젊은 날 신문사에 다녔다니 전업 시인은 아니었지만 여러 권의 시집을 냈고 수많은 문학상을 섭렵하기도 한 문인수 시인, 그가 지난 6월 7일 향년 76세로 영면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그리고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지만 /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중략…/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되새김질하듯 선생의 대표 시 `달북'을 외어 본다. 내친김에 수업에서 다루었던 <두메, 빈집에 들어서니>를 옮겨 본다.

?`싸릿대 삽짝 풀썩 허물어진다 누구요/오두막 헛간채의 삭은 디딜방아가 쿵더쿵 쿵덕 오래 쌓인 먼지를 찧고 있다 누구요/봉당에 매달린 솔비 짚소쿠리 함지박서껀 쿵덕쿵 쿵덕 한꺼번에 흔들린다 누구요/쪽마루 밑 삽살개 소리도 자지러지게 굴러 나와서/앞마당 수북이 강아지풀 개밥풀들이 바람 밑으로 뒷곁으로 달아난다 누구요/방문 정지문이 쿵덕쿵 쿵덕 여닫히며 허물어지며 누구요/누구요 누구요 누구요'

시 `두메, 빈집에 들어서니' 문인수



이 시는 구성진 민요 가락처럼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쿵더쿵 쿵덕, 누구요, 누구요, 누구요. 언어와 음악성이 화려하다. 선조들은 운율, 즉 율격을 엄격하게 지키며 시를 썼다면 근래에는 음악성을 아예 무시해버리곤 한다. 그러다 보니 절제도 압축도 없어, 시인지 수필인지 애매한 글로 산문시라고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경우를 참작한다면 이 시는 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시는 민요 가락처럼 어깨가 들썩거려질 뿐 아니라 구절구절에 상상의 여백이 존재한다. 잔치마당의 인절미처럼 선생의 시어들은 차지고 쫄깃쫄깃하다. 거기에 운율까지 흥겨우니 역시 시적 역량이 풍부한 시인의 시는 돋보이기 마련이다.

두메산골의 다 쓰러져가는 빈집의 정황이란 먼지 풀풀 날리는 이를 데 없는 폐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진대 그 폐허를 뒤적이는 시인의 눈은 참으로 놀랍다.

누구요, 누구요, 누구요, 누구요. 반색하며 한달음에 달려나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삽짝이며 헛간채의 디딜방아며 봉당의 소쿠리 함지박, 앞마당의 강아지풀까지 풀썩 허물어지는 것들이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반기다니….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정황의 승화를 이름이리라. 승화된 언어 속 진한 슬픔을 읽어내는 것은 독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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