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도로는 생필품
소방도로는 생필품
  • 박학순 청주시 하천방재과 팀장
  • 승인 2021.06.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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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박학순 청주시 하천방재과 팀장
박학순 청주시 하천방재과 팀장

 

도시계획도로에는 광로, 대로, 중로, 소로가 있고 그중에서 폭 12미터 미만 도로를 소로라 하는데 흔히 소방도로 또는 이면도로, 생활도로, 골목길이 소로에 해당된다. 북한에서는 주민통행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소방도로를 “소방차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만든 전용 도로”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실제로 소방차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곳은 고속도로밖에 없다.

꽉 막힌 도로에서 소방차는 하염없이 경적만 울릴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켜주지 않는 차량을 지나기 위해 무리하게 중앙선을 넘어가며 위태롭게 운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에서 보행자나 자전거, 오토바이를 운행하는 사람들은 소방차나 긴급자동차가 알아서 비켜 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소방도로가 없는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만약 소방도로가 없다면 사람들은 청소차가 운행하는 도로까지 쓰레기를 들고 나와야 하고, 집 주변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먼 거리를 걸어야 하며 의식주 관련 기반 시설도 취약하여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바둑판식 도로망 구축이 경제성장과 효율적인 국토개발을 견인해 왔듯이 종전까지 도로의 기능은 단순히 이동성과 접근성이 전부였다면 앞으로 도로계획 패러다임은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대로보다도 소로의 다양한 도로 기능과 복잡한 교통 환경을 이해하고 분석하여 사람 중심의 섬세한 골목길 조성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이처럼 소방도로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과도 같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생활밀착형 SOC 사업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고 특히 현 정부에서는 국민 생활 전반에 파급력이 큰 지역밀착형 사업을 집중 지원한다고 하나 도시계획도로사업은 여전히 지자체 몫으로 떠넘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청주도 금년부터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해지 절차가 잇따르고 있으며, 내가 근무하는 청원구만 하더라도 오십여 개의 도시계획도로가 일몰제로 해제됐다. 그 주변에 살면서 그토록 기대하던 도로 개설의 꿈이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에도 골목길이 있고 청소차가 접근하지 못하고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뒷골목은 전국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도로를 국가에서 더 이상 지자체에 맡기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바로 기초 생활 보장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실핏줄 같은 소방도로 개설에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나서길 바랄 뿐이다.

우리가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생필품과 사치품이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도시공원도 시민들에게 중요하지만, 골목길조차 없는 지역 사람들에게 소방도로는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생필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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