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같은 기억
화살 같은 기억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06.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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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갑자기 눈물이 핑 솟는다. 어딘지 모르게 접어두고 싶었던 향수만큼이나 소중한 물건이 과거의 나를 일으키는 중이다. 방금 한 밥을 도시락 용기에 담으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손에 닿는 그 뜨거운 감촉이 나를 아주 오랜 시절로 빠르게 데려다 주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요즘에는 보기 드문 스텐으로 만들어진 용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이렇게 도시락통에 밥을 담아두고는 한다. 특별한 기회가 있어서가 아니다. 먼 먼 날로 거슬러 올라 사라지고 흩어졌던 기억들을 줍는 내면의 시간에 빠져드는 것이 좋아서다. 지금에 비하면 너무나 상반되는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이 자라나 오늘에 이르렀으니 흘러갔지만, 과거는 아직도 남아서 현재를 살찌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예순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 깨달았다. 그 원동력은 밥이었다. 지금 내 손에 닿는 뜨거운 느낌이 그때의 엄마마음이라고 화살로 꽂히니 미안한 마음 끝없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전실 자식인 내게 그저 의무적으로 챙겨주셨던 도시락이겠거니 하며 지내왔고 사랑보다는 밥만 담아주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맘을 지금 아신다면 아마 점심조차 굶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의 철없음이 죄스럽다는 것을 갑자기 밥을 통해 깨닫는다.

세월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오랜만에 엄마의 진심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나 나름대로는 많은 고뇌가 스쳐 갔다고 본다. 왠지 쓸쓸하다 여겼던 기억의 늪에서 헤어 나오고 싶었던 끝없는 갈구가 이런 의미를 찾게 된 것 같다. 아무리 아닐 거라고, 사랑받지 못했을 거라며 혼자 쌓아왔던 아성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내 자식을 키우면서는 보온도시락이며, 예쁘고 편리하게 만들어진 용기를 쓸 수 있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급식이 되기에 도시락이란 이름은 드물게 사용되는 편이다. 그러나 향수에 밀리듯 과거를 거스르는 생각이 그리 싫지 않았던 것은 무언가 가슴에 남아 있던 미완의 그림자를 뚜렷하게 완성시키고 싶어서였나 보다. 바로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었으며 밥에 담긴 무한한 형상이란 것을 알았다.

화살처럼 다가온 느낌, 그것만으로도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이제야 안착을 했나 보다. 오해와 원망을 끌어 안고 살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아깝다는 경지를 보게 된 셈이다.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세상을 향하는 눈길조차 예민해져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부터 따뜻해야 반사되는 느낌도 그러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려고 오래전 네모난 도시락통을 마련해 놓았던 걸까. 그릇장 한쪽에 얌전히 보관해둔 것이 갈증 났던 엄마의 사랑이었음을 눈으로 보았다. 이도 저도 흘러간 이야기지만 돌아보니 고맙기 그지없다. 가끔은 이렇게 과거로 회귀해서 잊었던 것을 찾아내는 일도 괜찮지 싶다. 서늘하게 여겼던 잔영은 좋은 방향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조용한 미소가 샘솟듯 늘어만 간다. 뜨거운 밥을 통해 느끼는 감촉, 바로 손끝에서 엄마를 만났으니 오늘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을 본다. 유난히도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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