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사다
봄을 사다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03.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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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값을 치르고 봄을 샀다. 화원 앞을 지나던 중 가득한 꽃분에서 마음이 동하고야 만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자동차에 모시듯 집으로 왔다. 자리 잡은 현관이 분홍빛으로 가득하다. 빼곡하게 고개 든 꽃잎들은 새로운 곳이 신기한 듯 연신 앞다투어 가며 나를 보고 있다. 이제 동거하게 되었으니 잘 살아보자며 눈 맞춤으로 답한다.

꽃은 이렇게 좋은 쪽으로 마음을 자극하는 기술이 있다. 아닌 듯해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한 번쯤은 머물게 하는 것도 꽃의 속성이지 싶다. 사실 남편이 먼저 화분을 들이자며 제의를 해왔기에 그렇다. 덤덤한 것 같은 사람이라 여기던 차 그 정서에 조금은 놀랐었다. 살짝 엿보게 된 그 마음이 왠지 오래 묵은 편한 맛처럼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비켜가지 않는 봄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네 번의 계절 중에서 유독 봄이라는 시간에 기대를 걸며 지내왔기에 그랬나 보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같다고 짐작한다. 살면서 무의식중에도 언제나 희망과 새로움을 갈망하는 의지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라는 이름이 살갑고 좋다.

가만히 보니 봄에 담긴 의미는 유독 특별하다. 네 번의 계절을 위해서 기초를 딛게 해주는 역할을 감당하기에 그렇다. 따뜻한 바람을 몰아와 언 땅을 녹이고 생명을 틔우는 기이함은 정말 놀랄만한 능력이지 않던가. 나는 그것을 삶에 비교하고 싶은 심정이다. 봄이 없다면 인생 시계가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에 이르지도 못할 것이며 그 과정의 진가조차 그냥 흘려버리게 된다. 그래서 대가를 치르더라도 봄을 꼭 들여다보아야 할 일이다.

봄은 공짜가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쉬운 일만은 만날 수 없듯이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한 계단 위로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바로 봄의 역할 때문이었다. 누구나 잠재해 있는 삶의 의욕을 내려놓지 않고 인내하며 견뎌낸 결과라 여긴다. 미미할지라도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리 주변에서는 이렇게 모두가 소중한 몫을 지니고 있었다.

잠깐의 만족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물을 통해 조금이라도 활기를 얻어내는 것에 값을 치러야 한다면 나쁠 것도 없다. 돈을 주고 산 꽃분이었지만 스민 가치는 내게 충분한 유익을 가져왔다. 그깟 일로 호들갑을 떤다 해도 괜찮다. 내 눈을 며칠이나 즐겁게 할까마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봄을 한 아름 집 안까지 들여 놓았다는 사실이 흡족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과정은 이렇게 봄을 지나야만 결실에 이를 수 있다. 가끔씩 삭막함에 시달릴 때면 주저 없이 봄의 기억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싶다. 꼭 살아 있는 것에서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드시 좋은 생각만을 건질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눈을 뜨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인생의 계절은 그냥 가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치러야 할 값이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된 기회였다. 모든 희로애락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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