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유치원처럼
평생 유치원처럼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장학사
  • 승인 2021.03.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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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장학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장학사

 

낭패다. 출근을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걸자마자 계기판에 노란색 경고 메시지가 뜬다. 3월 1일자로 이동을 해서 새롭게 출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이전 사무실은 걸어가도 될 거리였지만, 이제는 차 타고 족히 40분은 가야 하는 거리니 걸어갈 수도 없다. 아직 사무실 전화번호조차 입력되어 있지 않다. 허둥지둥 찾은 동료의 휴대전화로 좀 늦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카센터로 향했다.

카센터도 아직 문 열기 전이다. 30분 넘게 기다려서 가까스로 점검을 시작했는데 경고 메시지의 원인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결국 사무실에 다시 연락을 하고 하릴없이 카센터 사무실 탁자에 앉았다. 짧지만 뜻밖에 주어진 시간,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이른 아침부터 카센터를 찾은 사람들은 제각기 휴대전화 화면에 열중하고 있다.

혹시 읽을거리가 있을까 싶어 차 안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데 트렁크 속 물건들 틈에 끼인 책 하나가 툭 떨어진다. 미첼 레스닉의 「평생 유치원」이다. 이런 책이 내게 있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느 유치원 선생님이 읽어보라며 준 책이다. 챙겨준 마음에 무심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그래, 너로 정했다.'지인의 마음에 보답하듯 책을 읽기 시작했다.

MIT 미디어랩 미첼 레스닉 교수는 책에서 미래 교육을 견인할 다양한 창의교육 솔루션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첨단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경험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실패의 경험일지라도 말이다.

며칠 전 점심을 먹으며 들었던 옆 부서 부장님의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장에 다녀온 어머니가 커다란 라디오를 머리에 이고 온 날을 잊을 수가 없다며 시작된 이야기다. 난생처음 상자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신기했을까? 호기심 많은 소년이던 부장님은 어머니 몰래 라디오를 낱낱이 뜯어보았다. 그러나 해체된 상자 속에는 알 수 없는 유리관과 전선들뿐이었고 다시 조립하기는 실패. 결국 된통 야단을 맞고 끝났다는 새드 엔딩이다.

당시 값비싸고 귀한 라디오를 망가뜨린 아들을 보며 아연실색했을 어머니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한편 호기심과 빛나는 탐구 정신에 대한 이해와 격려를 받았더라면 부장님은 지금 태권브이를 만드는 과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며 다들 한바탕 웃었다.

요즘 요린이, 주린이, 헬린이 같은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호기심이 많고 능숙하지 못한 경우 어린이를 의미하는 `린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다. 어린이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어쩌면 아이들의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꺾는 것은 아닌지….

미첼 레스닉은 유치원이 그가 추구하는 배움의 공간이고, 나이에 상관없이 배움의 과정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처럼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학교와 생활의 터전이 진정한 유치원처럼 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켄 로빈슨이 TED 강연에서 한 말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틀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결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실수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정의하는 교육 시스템 아래서는 도리어 사람들의 창의적 역량을 빼앗는 교육만 가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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