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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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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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고난을 이겨낸 힘을 동포에게
김 훈 일 주임신부(초중성당)

흉년이 들었다.

1년 양식이라야 손바닥만한 밭에서 캔 고구마 두 가마가 전부였다. 그 양식으로는 세 식구가 겨울을 나기도 전에 모두 굶을 죽을 판이었다. 내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한다. 그래 돈 벌러 가자. 아들과 아내의 양식인 고구마가 찬바람에 얼어 썩지 않게 방안에 넣어 짚으로 싸고 또 쌌다.

흉년 겹쳐 굶어죽기 십상인 판에 병든 마누라와 젖먹이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길이 왜 그리 서럽던지. 돈 벌어 오마. 저 고구마는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양식이니 아껴 먹어야 된다고 몸이 편치 않아 누워 있는 마누라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마누라와 젖먹이 아들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내일을 위해 참자며 짧은 이별을 고했다.

옷가지를 챙겨 무작정 집을 나섰다. 가을비가 뿌리는 들판은 가로질러 산마루에 올라서니 자신의 집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두 발짝만 내려서면 자신의 집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찌릿 찌릿 했다.

병든 아내와 자식새끼를 두고 돈 벌러 가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 산마루에 퍼질러 앉아 펑펑 울었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울어도 왜 우나 하는 사람 없어 체면도 집어 던지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 처량한 울음소리에 재를 넘던 산새도 가슴이 저미는지 빠끔 내려다보고 덩달아 목을 놓아 울어 제쳤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90년대 후반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굶어 죽어가던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60년대 중반 우리 농촌의 이야기다.

우리도 그랬다. 국민 소득 100달러를 간신히 넘는 세계 최하의 빈민국이 우리였다. 하루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런 고난을 이겨내고 집집이 차 한 대쯤은 갖고 살아가는 나라가 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이젠 선진국을 내다보며 열심히 산다.

그 어려웠던 시절,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던 구호물자와 무상원조, 값싼 차관은 경제를 살리고 빈곤을 해결하는 원동력이 됐다. 선량한 마음과 조건 없는 도움이 없었다면 이만큼 살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어려울 때 도움이 필요하고, 서로 그렇게 돕는 가운데 함께 성장한다. 어려운 시절 우리에게 투자하고 믿어줬던 각 국의 투자자들은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에 한몫 톡톡히 보고 있다.

지금 북한동포들이 예전의 우리보다 더 큰 고난에 처해 있다. 조금만 도와준다면 다시 힘을 내서 살 수 있는데, 벌써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는데 핵무기나 만들고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에 무슨 쌀을 그렇게 퍼주냐고 힐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그에 합당한 복수를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꼭 복수를 해야 하는가 참 교만하다. 좀 살만해졌다고 가난한 동포에 대한 괄시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설득하고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아직도 미움을 키우며 세계 수많은 민족의 웃음거리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 상한 힘을 가진 우리가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저력을 찾아보자. 북한을 설득하고 잃어버린 40년의 시간을 줘보자. 같은 동포요, 강인한 민족이기에 분명히 일어설 것이다. 평화는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데 오는 것이다.

아픈 한국 전쟁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6월이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좀 억지스럽고, 황당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동포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얼마 돕지도 않았는데 북한은 도움이 없으면 배고픔조차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옹졸한 마음으로 더 큰 불행을 키우지 말았으면 한다. 화해와 통일은 서로 돕는 가운데 우리 민족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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