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의 위로
10㎝의 위로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1.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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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사각 비닐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라. 그리고 흔들어라. 그러면 산소와 만나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리. 안에 품으면 더 뜨거워져 70℃까지도 열을 발산한다. 오직 타오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2시간이다. 그때를 넘기면 싸늘히 식는다. 또 다시 열을 낼 수가 없다. 온열을 발산해 낸 몸은 가차없이 버려진다.

사람들은 너를 `핫팩'이라고 부른다. 다른 이름으로는 손난로이기도 하고 주머니난로라고도 한다. 내가 부르는 이름은 손난로다. 사무실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지 못하니 쥐고 있는 시간이 많다. 내 손안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서 선택했다.

올해 처음으로 사본 핫팩이다. 사무실의 온풍기가 오래되어 소리만 요란할 뿐 제 본분을 못하고 있다. 노인의 감기 걸린 소리를 낸다. 가까이에 손을 대보아도 미지근할 정도다. 18℃에서 도저히 올라갈 생각을 않는다. 다섯 명은 모두 손난로가 손에 쥐여져 있다. 그 작은 10cm에 의지하여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이다.

날씨가 너무 추운 날은 핫팩의 온도가 쉬이 올라가지 않는다. 아무리 흔들어도 밍근하여 따뜻하지가 않다. 거치적거려 주머니 안에 넣었다 무심코 꺼내다 놀란다.

한껏 온도가 올라 있다. 사용을 해본 적이 없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한 탓이다. 왜 주머니난로인지 알겠다.

다사한 난로를 만지작거린다. 네가 아니었다면 낯선 환경에서 맞는 첫 겨울이 더 추웠을 게다. 마음까지도 얼게 만들어 겨울이 더욱 길게 느껴졌으리라. 온종일 떠는 나를 위해 전해주는 온기. 추위에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에게, 찬바람을 이겨내야 하는 거리의 상인들에게, 또 겨울을 버텨내야 하는 군인들에게 주는 10cm의 위로다. 이건 분명 헌신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온몸을 녹이는 너의 능력은 내겐 감동이다.

퇴근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제 쓸모가 없어진 손난로가 휴지통에 던져진다.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20℃이었다. 겨울 들어 최고로 추운 날씨다. 이런 날은 손난로를 깜빡하고 챙기지 않으면 낭패다. 사무실의 냉기와 맞서 온종일 씨름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조그마해도 온기가 체온을 올려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겨우내 책상 위의 내 손 주위에 머물듯 하다.

헌신을 마치고 미련 없이 내던져지는 너를 보면서 왜 엄마를 보았을까. 뱃속의 얇은 비닐 같은 막을 뚫고 나온 아기. 넘어지고 쓰러져 흔들릴 때마다 수없이 일으켜 세웠다. 행여 다칠세라 노심초사하며 바람을 막아주었다. 안으로 따뜻하게 품어 열 달을 채운 몇 배의 시간을 정성으로 품었다. 걸음마를 하고 뛰게 되기까지 퍼부은 사랑은 다 큰 어른으로 성장시켰다.

어른은 영양분이 필요가 없어지자 엄마가 거추장스러워진다. 일부러 까맣게 잊으며 또 다른 사랑을 찾아간다. 저를 바라보고 있는 걸 알면서 외면하면 혼자 남아 외사랑이 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내리사랑은 이렇게 외로운 법이다. 돌아가시고 없는 엄마에게 나는 어떤 사랑이었을까. 짝사랑이거나 외사랑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게지.

아들이 주말에 집에 온다는 소식이 왔다. 못 본지 일 년을 훌쩍 넘겼다. 기다림이 설레기까지 하다. 엄마인 나는 그에게 알면서도 딴청을 피우는 외사랑일까? 몰라주는 짝사랑일까? 어떤 사랑이어도 괜찮다. 단지 그가 삶의 추위에 떨 때 따스한 손난로가 되고 싶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전혀 예기치 않게 만나는 반가운 온기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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