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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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7.06.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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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에 기대사는 가장의 자세
권혁두<편집국 부국장>

큰 집에서 생활비의 대부분을 얻어다 쓰는 가난한 집은 돈을 관리하는 가장의 수완에 따라 형편이 좌우된다.

이 돈을 지혜롭게 활용해 소득을 창출함으로써 식구들에게 풍요를 주는 가장이 이상형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이 같은 능력을 발휘해 큰집의 믿음을 얻은 후, 더 많은 돈을 얻어내 기울어진 가세를 회복하는 가장이면 그는 완벽형이다.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이나 투자에 연연하는 대신 생활비에서 단 한푼도 허투루 누수되지 않도록 알뜰하게 사용하는 가장은 차선형이다. 안정을 꾀하는 그는 값비싼 외식이나 여행, 명분없는 잔치 등을 철저하게 자제하며 생활비가 집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좀생이'라는 비아냥도 듣지만, 모험을 피해가는 그의 소극적 기질이 오히려 절대 가족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사람은 아니라는 점에서 신뢰감을 갖게 한다.

문제는 얼토당토않은 용도에 생활비를 탕진하며 식구들을 그야말로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리는 무능한 가장이다. 일단 그는 일을 벌인다.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시장성 분석이나 수요 예측 같은 사전 검토는 무시하거나,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 식'이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42곳이 자체 재정으로는 공무원 봉급조차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빈한하다. 충북도내 기초단체도 절반이 재정자립도가 20%에도 못미처 예산의 80% 이상을 국고에 의존한다. 지역에서 재원 창출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지역의 경제가 경색돼 있고, 주민들의 삶이 고단하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이런 지자체에 배분된 예산일수록 더 합리적으로 쓰여져야 한다. 이런 지자체 일수록 예산을 관장하는 단체장의 능력에 따라 빛과 어둠을 오가는 것은 당연하다. 단체장은 큰집에 기대사는 곤궁한 가정의 가장과 다를 바 없다. 큰집에서 타온 돈을 늘릴 능력이 없으면, 그 돈이나마 불필요한 곳에 누수되지 않도록 알뜰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과 지역이 처해 있는 상황을 망각한 단체장들이 적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재정자립도가 13.3%에 불과한 도내 한 지자체가 지난해 지역의 명소를 전국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치른 가요제를 사례로 들어본다. 예산 1억 3300만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7000만원이 행사를 대행한 한 방송사로 돌아갔다. 초청가수 섭외와 진행을 맡고 녹화방송을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1350만원이 수상자들 상금으로 지출됐다. 모두 푸짐한 상금을 노리고 가요제를 순례하는 외지인들이다. 거의 대부분 예산이 밖으로 유출된 셈이다.

이 지자체가 스스로의 처지를 자각했다면 방송사에 맡기는 대신 직접 행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시골도시의 가요제를 녹화한 라디오 방송의 시청률은 물어보나 마나다. 초청가수와 사회자를 직접 섭외하고, 가요제도 읍·면대표 노래자랑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 정상이다.

올해 2박 3일간 연 옥천지용제 예산도 1억 300만원이다. 문학제에 참가한 예비작가들에게 적지않은 상금도 돌아갔고, 가수들이 초청된 군민노래자랑도 있었지만, 두시간짜리 가요제보다 예산은 30% 이상 덜들였다. 쓰레기매립장 건설비가 부족해 30억원을 충북도에서 융자받은 지자체가 외지인들에게 상금을 펑펑 나눠주는 잔치를 벌이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런데도 이 지자체는 종전대로 가요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최찬기 부산시 동래구청장은 10년된 포텐샤를 계속 관용차로 사용한다. 올해 차량구입비로 책정한 4000만원을 스스로 삭감했다. 그는 27만 9000명의 구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5만 군민을 대표하는 단체장이 이 정도는 돼야한다며 관용차를 최고급으로 갈아치운 이 지자체에 동래구청을 '타산지석'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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