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노래가 내게로 왔다
어느 날, 노래가 내게로 왔다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 승인 2021.01.25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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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트로트가 뭘까. 자상파 정규방송부터 케이블방송까지 전 국민은 트로트에 열광이다. 본방송은 물론 녹화방송까지 온갖 채널을 점령했다. 트로트 열풍으로 인한 트로트 전쟁이다 보니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외려 식상하다.

뽕짝이라 불리는 트로트를 촌스럽고 진부하여 꼰대 냄새가 난다며 멀리했다. 그렇다고 아이돌 노래를 따라 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나 빠른지 높은 음역에 가사도 영 알아들을 수도 없다. 발라드 또한 몇 번을 불러도 엇박이다. 게다가 사랑과 이별의 주제가 대부분인 발라드, 듣고 있으면 눈물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아 가무(歌舞)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당연 트로트 방송에 불만이 중얼중얼 쏟아져 나온다.

예로부터 음악과 시를 즐기는 우리 민족은 `풍류(風流)를 아는 민족'이다. 풍속화에 보면 세월을 죽이고 유희를 즐기는 선비들 이른바 한량들이 등장한다. 시와 음악 그리고 가야금을 뜯고 거문고를 타며 바람인 듯, 음악인 듯 풍류에 취하는 풍속화엔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쩜 우리 민족은 내, 외적으로 담긴 풍류가 있어 오락과 가요방송프로그램이 인기순위 상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싶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횰로족(나 홀로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즐겨먹는 사람), 집콕족(집에서 즐기는 사람), 홈트족(홈 트레이닝하는 사람), 혼족(혼자 사는 사람) 등 유행처럼 번지는 족, 족 시대다. 나 역시 집콕족으로 헐렁한 고무줄 바지에 풍성한 셔츠차림으로 대충 둘둘 말아 묶어 올린 머리, 흐트러진 몰골로 시큰둥하게 소파에 반쯤 눕다시피 널브러져 있는 반복적인 일상. 트로트방송을 피하려 이리저리 리모컨을 꾹꾹 누르다 정신 번쩍 들어 벌떡 일어섰다. 티브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는가 싶더니 찰나에 사라진 한 줄,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허겁지겁 사라진 한 줄을 잡기라도 하는 양 티브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이어 온몸을 감싸는 영상과 음성 자막으로 가사가 삽입된 노래는 나를 흥분케 했다. 트로트였다. 시공간이 멈춘 듯 전율이 인다. 시적인 제목과 시적으로 표현된 향수, 애틋한 사랑과 삶의 애환을 그린 가사에 홀리어 인터넷 검색하는 손끝이 떨린다.

행여 제목을 잃어버릴까 입으로 반복적으로 응얼거리면서 0튜브를 검색하여 그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청취를 했다.

왜 트로트에 열광을 하는지, 왜 트로트에 맛이 있다고 하는지, 왜 트로트에 삶의 한이 서린 애환이 담겨 있다 하는지를 알 것 같다. 트로트의 심오하고 미묘한 매력 노래에 맛이 있었다. 무한반복으로 듣는 노래에 흥취 되어 있는 나처럼 절로 흥(興)과 한(恨)이 내재되어 있는 트로트는 모두가 똑같은 감성으로 서로가 동하여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트로트는 인생의 풍류와 멋을 느끼는 노래다. 세월을 거슬러 갈 순 없지만 잔잔하게 때론 강렬하게 그리고 애증을 담아 깊이 있게 파고드는 한음, 한음을 음미해 본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노래, 아스라이 멀어져 간 세월의 흔적을 억지로 찾아내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아픈 고통을 억지로 구겨 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노래다.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트로트의 제목처럼 사진은 또 하나의 언어라 했듯 노래는 언어로 말하는 삶의 여정인 게다.

참 따뜻한 오늘,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달려가는 마음, 난 그간 거칠어진 마음을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그리고 세월 베고 길게 누워본다. 마음이 건강하면 콧노래가 나온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언제부턴가 흥얼거리는 나. 트로트 한 자락에 오늘도 채널 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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