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삶
미완성의 삶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1.01.2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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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나는 뜨개질을 싫어한다. 당연히 잘하지도 못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조급한 성격 탓은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손재주도 없는 편은 아니라 자부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뜨개질을 시작하면 완성을 못 했다. 다양한 뜨개 작품들을 보면 참 예쁘다 싶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단 욕구는 적었다. 그랬는 데 우연한 계기로 뜨개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을 사기 위해 읍내를 돌다 보니 `○○수예점'이란 간판을 단 곳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여러 가지 실과 뜨개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30년 이상,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뜨개질로 평생을 보내셨다고 한다. 옛날에는 수예점이 성행했는데 요즈음은 보기 어렵다. 예전에 중,고등학교 다닐 때 가정 시간 준비물을 위해 수예점에 다녔던 추억이 새롭다. 그때는 가리개나 병풍에 자수도 놓았었고 버선 깁는 방법도 배우곤 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바뀌다 보니 바느질이나 뜨개질은 진화했고 특별한 취미가 되었다.

무심코 지나치던 수예점에서 잠시 추억에 젖었다. 그때는 하기 싫었지만 요즘 유행에 맞게 변화된 작품들을 보니 새삼스런 느낌이다. 예전에 친정어머니는 장갑이나 목도리를 떠 주시곤 했는데 요즘 뜨게 작품들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예쁘다. 재료를 구입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뜨는 방법을 잠깐 배웠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그런지 실의 느슨함과 촘촘함을 유지하는 게 어설펐다. 조금 연습하면 괜찮을 거란 격려 속에 뜨개질하기 시작했다.

밤에 텔레비전을 보며 잠깐씩 뜨개질을 했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팠다. 제일 힘든 건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였다. 뜨개질을 잘하는 지인이 새삼 경이로웠다. 초보에게 무엇인들 쉽겠는가. 무늬를 맞추어야 하는데 한 코 빠트리면 다시 한 줄을 풀고 두 줄을 다시 뜨다가 또 풀어야 했다. 반복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자 점점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모처럼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이걸 왜 시작했나 하는 후회가 앞선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막상 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한두 시간씩 몰입하니 잡념도 사라지고 일상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도 되었다. 한 코만 빠트려도 무늬가 맞지 않아 풀었다가 다시 떠야 했다. 이제껏 살아온 내 삶도 이 실처럼 풀었다가 다시 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삶은 되돌릴 수 없으니 기회가 딱 한 번뿐인 운동 경기 같기도 하다. 꿈 많았던 젊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어느새 육십이 코 앞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던 시행착오를 일부분이라도 되돌려 뜨개질을 하듯 다시 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오면서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했던 선택 말고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뜨개 작품 목표가 하향 조정되었지만, 여전히 미완성이다. 한 가락씩 실을 엮어 촘촘히 짜여지는 모습 속에 오늘 하루를 투영한다. 급하게 서둘지 않고 천천히 즐겨볼 생각이다. 내 삶도 이렇듯 엮어져서 오십여 년이 훌쩍 지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 볼 때 내 삶은 어떤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을까. 현재의 시간을 빠트리지 말고 촘촘히 무늬를 완성하듯 엮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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