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세상 느린 소통
빠른 세상 느린 소통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0.12.2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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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내 휴대전화 화면에는 설치된 앱(Application)들이 꽤 많다. 먼저 문법 번역기 두 개와 사전 앱이 두 개씩 설치돼 있다. 그 뿐인가.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생성한다는 SNS 앱이 네 개나 깔려 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거의 사용하는 카카오톡은 기본이고 중국 학생들이 사용하는 위쳇과 여러 나라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올해 들어 와츠앱을 또 깔았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인맥이 꽤나 넓은 사람으로 오해받을 만하다. 설치된 모든 앱들을 내가 매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괜히 설치만 한 것도 아니다. 문법 번역기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자주 사용하고 페이스북도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지 사항이 있을 때는 유용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단체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더 빠르게 전달되는 효과도 있다. 온라인 앱은 참 편리한 문명의 기기다.

와츠앱은 올 여름부터 한 명의 카자흐스탄 친구와의 소통을 위해 설치했다.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 그녀와 문자 메시지를 이용했는데, 복사해서 번역을 하는 것도 번거롭고 자주 보지 않으니 빠르게 소통하기 힘들었다. 아직은 한국어가 서툴러 대화하기도 어려우니 와츠앱을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격으로 내가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와츠앱은 그녀가 자주 사용해서 그런지 소통도 빨라졌다. 한국어 쓰기 연습도 겸해서 짧게라도 한국어로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지만 한국어가 어렵다는 이유로 매번 러시아어로 메시지를 보낸다. 카자흐스탄어도 있었지만 그녀가 러시어를 잘 알았고 번역이 편해서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받은 메시지를 문법 번역기를 통해 이해한 후, 나도 한국어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그녀에게 보냈다. 우리의 대화는 특별한 것이 아닌 간단한 것이었기에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나도 이제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알았어요'같은 인사말은 글자 모양을 보고 대충 이해한다. 러시아 키릴문자는 모양은 영어 알파벳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나는 러시아어를 모르니 글자 모양을 그림처럼 이해하고 첫 번째 두 번째 글자 모양만 보며 대충 알아듣곤 했다.

그렇게 문법 번역기를 의지해 나름대로 이해하며 소통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네', `아니요'같은 대답은 나를 배려하듯 가끔 한국말로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간단한 전화 통화도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이런 날이 언제 올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쌍둥이 남매가 있는 그녀는 한국어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잘 놀던 아기들이 책만 펼치면 엄마 곁으로 왔고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변화는 문자 메시지뿐만 아니었다. 한국 음식을 거의 안 먹던 그녀가 이제는 배추김치, 파김치, 고들빼기 김치 등 김치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파김치를 좋아해서 두 번 만드는 걸 보더니 어느 날은 혼자 파김치를 담가 놓고 보여 주기도 했다. 같은 나라 친구도 거의 없고 집에서만 답답하게 지내던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기들 때문에 일상은 바빠도 마음 한 켠은 무료함과 외로움에 젖어 우울증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그녀의 일상을 조금 흔들어 주니 느린 시계가 다시 움직이듯 그녀도 세상속으로 가까이 나오고 있었다. 사람 간에 대면하기 어려운 시기지만 가끔 와츠앱에서 만나며 우리는 느리지만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 끝은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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