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파정 가는 길
식파정 가는 길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12.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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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 (진천 주재)
공진희 부장 (진천 주재)

 

백곡 저수지 허리를 따라 목적지로 향했다. 식파정 입구라는 간판에 끌려 자동차 핸들을 꺾었다. 덕분에 편백나무 침대를 짜려던 계획은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무엇에 홀린 듯 식파정 입구로 들어섰다. 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비좁은 흙길이 길게 이어졌다.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붙은 맨 땅에 노면상태도 좋지 않아 차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전기차는 배터리가 차바닥에 깔려 있어 차바닥 충돌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사고가 자주 터지던 기억이 떠오르며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식파정은 좀처럼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제법 멀리 걸어왔지만 식파정은 그곳에 없었다.

기대와 어긋남이 반복되며 차 타기와 걷기를 여러 번,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이 나타났다.

길가에 수북이 쌓여 신발에 밟힐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스펀지 역할을 해준다.

호숫가를 따라 박아 놓은 말뚝과 말뚝 사이에 밧줄이 걸려 있어 이곳이 둘레길임을 알려준다.

생각보다 멀리 걷다 보니 숨쉬기가 답답해져 마스크를 벗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마스크를 쓰고 혼자 걷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랜 걸음걸이 끝에 식파정이 반겨준다.

식파정(息波亭)은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 뒷산 백곡저수지 근처에 있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식파정(息波亭) 이득곤(李得坤)이 1616년(광해군 8년)에 자신의 호를 따 지은 정자이며 식파정이라고 적힌 편액(扁額)이 걸려 있고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 백곡(栢谷) 김득신(得臣) 등 21명의 제영(題詠)이 편액으로 걸려 있다.

이득곤은 학문을 좋아하여 여러 학자들과 친교하였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학자들이 찾아들었다.

벼슬길에 나갈 것을 권유받았으나 광해군 때 혼탁한 정쟁을 멀리하고 향리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여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들리는 것은 그 소리도 없어서 그 물결이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니 또한 그 물결의 쉼을 알겠다. 밝은 밤에 이르러 창문을 열어 놓고 감상하니 흰 달이 채색을 드날려 달과 물결이 한빛이 되니 곧 물결이 쉬고 달리 않는 것을 또한 가히 알 수 있었다. 대개 이 물결이 맑게 모여도 머물지는 않고 천천히 흐르면서 급하지 않은 것은 그 지세가 평평하고 언덕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군이 반드시 이러한 이유를 가지고 식파정이라고 이름 지은 것을 내가 알겠다' (백곡 김득신의 息波亭記 중에서 / 청주대학교산학협력단 식파정시문집 번역본 발간 학술용역)

물결이 가라앉은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며 내 마음의 파도를 살펴본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향상됐는데 왜 우리는 부지런해야 하나?

TV, 자동차를 넘어 비행기, 컴퓨터 등 첨단 문명의 이기를 접하며 누리는 기회가 20~30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우리 마음의 파도는 이 세상의 어떠한 사물이나 시스템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진희가 지니에게 묻는다.

`스티브 잡스와 스마트폰에 열광하던 그대, 여전히 행복한가?'

지니가 진희에게 되묻는다.

`마음의 파도가 모두 다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경계,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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