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11.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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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오늘 몇 깡 했나요?”

올해 유행한 인사말이다. 일일 일깡이 한동안 대세였다. 하루에 몇 번이나 깡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로 보고 댓글을 달았는가 묻는다. 가수 비는 본인의 깡을 두고 1일 3깡은 기본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모두 신조어 열풍에 편승해 즐기는 분위기다.

비의 “깡”이라는 곡은 2017년에 발표되었다. 처음에는 조명도 못 받고 사랑도 받지 못한 시대에 뒤처진 노래라는 평가였다. 허세와 자아도취적이라는 말로 철저히 조롱을 받기도 한다. 싸늘한 반응은 한물간 가수취급을 받는다. 많은 사람의 비난 속에서 이 노래는 스러져갔다. 대중들에게서 묻혀가던 곡이 인기 있는 콘텐츠를 의미하는 밈을 만난다. 밈은 “깡”을 새옹지마(塞翁之馬)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누가 알았으랴. 3년 후 어느 날 찾아올 역주행을. 한 여고생이 패러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깡은 놀리려는 의도였다. 계속 보다 보니 중독이 되고 매력에 빠져 젊은이들 사이에 숨어서 듣는 명곡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과한 것이라도 유머가 있으면 그걸 즐김의 대상으로 바꾸는 밀레니엄 세대가 새로운 신화를 쓴 것이다. 비의 “깡”영상을 하루에 한 번 필수 시청해야 한다는 1일 1깡 신드롬을 일으킨다.

깡의 사전적인 의미는 악착같은 기질이나 힘을 뜻한다. 처음에는 깡다구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 말에 겨우 3깡을 가지고 뭘 그러나 했다. 우리 엄마는 10깡은 거뜬히 했는데 하며 우스웠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로 부지런하셨다. 무능한 지아비를 만나 평생토록 일에 치여 살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7km나 떨어져 있는 버섯공장에 차비를 아끼느라 걸어서 다녔는데 집에 돌아오면 늘 늦은 시간이었다.

언제나 분주하고 바쁜 엄마로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눈을 감으면 동동걸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잠시도 편히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소리를 들어 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그때 한숨소리를 들었다면 조그만 나로서는 꽤 불안했으리라. 엄마는 약한 여자일 수가 없었던 거다. 자신을 바라보는 네 명의 자식들이 있어 강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엄마는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무서움도 모르고 힘들지도 않고 힘이 끝없이 솟는 불사조인 줄 알았다. 이런 강인함의 원천은 모성애의 힘이지 않았을까. 그 사랑이야말로 조건 없는 희생이었다.

이제 돌아가신지 3년. 뼛속 깊이 보고 싶을 때면 아리아리함이 깊은 물 속의 연어로 살아난다. 어미 연어는 알을 낳은 후 한쪽을 지키며 자리를 뜨지 않는다. 갓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이 자신의 살을 쪼아 먹으며 성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끼들을 위해 극심한 고통을 참아낸다고 한다. 끝내 뼈만 남은 채 서서히 죽게 된다.

일생을 깡으로 사신 엄마의 형해(形骸) 앞에 나는 오열했다. 여자로서의 생을 잃은 가여운 한 여자가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모(母)로서의 인생만 살다 가신 분. 10깡을 했던 엄마였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평균미달인 체력으로 살고 있지만, 남들에게 보기보다 강하다는 말을 듣는다. 내게 깡을 물려준 덕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두 분의 단점만을 닮았다고 불만이었다. 아버지의 큰 키, 엄마의 예쁜 얼굴을 다 빗겨갔다. 미(美)에 관심을 두는 나이가 되면서 유전을 원망했다. 햇빛을 보지 못한 콩나물처럼 비실비실했을 나. 내가 최고로 잘한 건 “깡”이라는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 덕혜(德惠)가 엄마로, 주부로, 워킹우먼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물려받은 위대한 재산을 잘 지켜 아들에게 상속할 생각이다. 내가 그랬듯이 상속세는 지불하지 않아도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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