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주는 특강
낙엽이 주는 특강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0.11.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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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가을이 가려나 보다. 올해는 단풍 구경도 한 번 가보질 못했는데. 이달 초에 큰딸 혼사도 있었고 코로나 19 여파로 M여중의 민화 방과 후 수업이 2학기로 몰리는 바람에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부엌 창밖으로 내다보이던 감나무 잎도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단풍색이 고왔었는데 엊그제 내린 비로 다 떨어져 버렸다. 따지 않고 남겨 둔 홍시 대여섯 개가 운치를 자아내고 있지만, 앙상한 가지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노란 잎 몇 장은 왠지 쓸쓸하다. 아침 설거지를 막 마치고서다. 때까치 한 마리가 감나무에 내려앉는 것이 보이기에 얼른 창가로 다가갔다. 때까치가 찾은 것은 다른 것보다는 조금 더 붉게 보이는 한 홍시였다. 이미 쪼인 흔적이 역력한 꼭지 위에 앉아 때까치는 이내 열매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새들에겐 아침 식사라고 하기엔 늦은 시간일 듯한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시간에 와서 저리 허겁지겁 홍시를 먹고 있는 것일까? 창틀에 턱을 괴고 혼자 상상하다 말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 흐뭇해 엄마 미소로 한참을 지켜보고 있다. 배가 몹시 고팠는지 무아지경이다. 차가 몇 대 지나쳐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아뿔싸 쪼아 먹던 홍시가 그만 툭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가. 밑에 주차되어 있던 은색 승합차 지붕 위로 너덜너덜해진 홍시 반 토막이 떨어지는 동시에 제풀에 놀란 때까치는 화들짝 날아가 버렸다. 얼추 주린 배를 채우기는 한 건지, 한동안 기다려봐도 때까치는 다시 오지 않는다. 문득 이 가을도 새처럼 날아가 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다.

장도 볼 겸 생각난 김에 하천 제방 둑에라도 가보려고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제방 둑 가로수의 잎들도 대부분 떨어져 맨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가 많았다. 하지만 떨어져 쌓인 낙엽으로 오히려 산책길이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낙엽 밟는 소리는 늘 좋다. 예전에 대학생이 되고 처음 맞던 가을, 집 근처의 태릉 입구부터 육사까지 가는 한적한 길 위에서 수북이 쌓인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으며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를 읊조렸었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톡톡히 앓던 때였다.

특히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이 두 구절에 심취해 가을 내내 과잉감정으로 지냈었다. 요즘 글쓰기 공부를 하다 보니 삶에 대해 계속 성찰하게 된다.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중년 이후 잘 사는 법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른 사추기(思秋期)가 온 것 같다. 생각이 원숙해지다 못해 실제 나이보다도 훨씬 앞질러 자꾸 노인네 같은 글을 쓰게 되는 게 문제다. 아직 나는 단풍잎처럼 내 색깔을 드러내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성숙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 안에 어떤 빛깔이 들어 있는지 속속들이 들춰 찾아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구르몽은 낙엽을 밟으며 영혼의 아파하는 소리, 날갯소리,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들었다지만, 내가 밟은 낙엽에서는 다른 속삭임이 들렸다. 순전히 내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시몬, 좀 더 머물러 있으라, 네 가진 본색대로 충분히 반짝거리다 더는 드러낼 것 없이 투명해지면 그때 날개처럼 옷자락처럼 내려앉으라'

오늘 낙엽이 준 특강으로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내 색 찾기에 몰두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사추기의 가을을 아주 천천히 반짝이며 건너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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